현대차 노조위원장 "임금인상 대신 세금인상 투쟁이 어떨까"

"'하후상박 연대임금' 계속하면 효과 날 것…'광주형 일자리'는 반대"
정규직 임금인상률 줄이고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중단 사측에 요구

연합뉴스

입력 2019-04-21 09:18:35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앞으로는 우리가 임금 인상 투쟁이 아니라 세금 인상 투쟁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부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지난 19일 울산 현대차 노조 사무실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 지부장은 "임금 인상으로 내 집 마련하고 노후 대책 준비하고 이럴 게 아니라 임금의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정부의 질 높은 사회보장을 받아 모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게 노동운동이 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하 지부장의 말에는 고액 연봉을 받아 이른바 '귀족 노조'의 대명사가 된 현대차 노조의 고민이 녹아 있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출범한 현대차 노조는 정권과 자본의 온갖 탄압을 이겨내고 국내 노동운동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강한 노조가 끌어낸 임금 인상 덕에 현대차는 노동자가 집과 자동차를 장만하고 중산층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직장이 됐다.

그러나 기업별 노사관계 구조에서 현대차와 같이 강한 노조가 임금 인상을 주도하는 대기업과 노조가 없거나 무력한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갈수록 커졌다.

이 때문에 현대차 노조가 임금 인상 투쟁에 나서면 으레 '귀족 노조'라는 냉소적인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현대차 노조가 기득권층으로 변질해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외면한다는 인식도 확산했다.

현대차 노조가 노동운동 비전의 재정립이라는 과제에 직면한 이유다.

하 지부장은 "우리가 (앞으로도) 임금 인상 투쟁으로 가는 게 맞는가, 운동 방향이 잘못된 게 아닌가"라며 "우리만 잘 먹고 잘살 게 아니라 모두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고민 속에 현대차 노조는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을 채택했다.

말 그대로 위는 작은 폭, 아래는 큰 폭을 적용하는 것으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은 적게 올리고 중소 협력업체와 비정규직의 임금은 많이 올리는 임금협상 전략이다.

현대차 노조는 정규직의 임금 인상률을 줄이는 한편, 납품 단가 후려치기와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중단할 것을 사측에 요구했다.

이를 통해 작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미세하게나마 줄어든 것으로 현대차 노조는 평가한다.

하 지부장은 "겉으로 드러난 결과는 미미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수십년 계속하면 우리 손자 세대쯤에서는 (눈에 띄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대차 노조가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내걸고 사측에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의 중단을 요구한 것은 지난해 현대차 재료비 인상을 불러 국내 사업 부문의 적자 전환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하 지부장은 보고 있다.

그러나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이 극심하게 벌어진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데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현대차 노조는 정부가 노동시장 양극화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추진 중인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초임 연봉 3천500만원은 현대차 초임 연봉(5천400만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노동자 임금 삭감을 통해 기업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친(親)기업 정책이라는 게 현대차 노조의 입장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기술 경쟁력의 한계 때문인데도 '광주형 일자리'는 문제의 원인을 고임금에서 찾고 임금의 하향 평준화를 추구한다고 현대차 노조는 비판한다.

하 지부장은 "고임금, 고숙련, 상향 평준화 정책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프레임 전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