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정치적 감수성과 반응성이 승패 가른다

최창렬

발행일 2019-05-01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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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권세력, 수구야당 반정치 명분 제공
총선 1년 앞두고 기존 적대·증오정치 회귀
진보유권자들의 '그자찍' 현실 될 수도 있어
국민에 반응하지않는 정권 승리 장담 못해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시민의 평등한 참여를 통한 정부의 대표성, 책임성, 반응성의 구현 여부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르는 핵심 내용들이다. 적어도 민주주의에서 공적 영역의 국가기구는 시민, 즉 유권자를 대표해서 존재한다. 책임정치 개념은 공적기관들이 유권자의 지지, 요구에 반응하는 것과 정부가 시민들의 요구와 다른 행동을 보일 때 정부에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정치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선거권 확대를 위한 보통선거 쟁취의 역사이며 이는 대표성과 책임성의 원리를 정착시켜왔다. 이러한 대표성과 책임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반응성이다. 반응성은 집권을 위한 공적 약속, 즉 공약을 실천하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주장에 민감하게 조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시민들의 요구와 여론에 부응하는 책임정부가 대표성, 책임성, 반응성을 담보한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했다. 보수야당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고 정국이 가파르게 대치하는 것 또한 정해진 한국정치의 수순이다. 한국당은 장외투쟁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후보자를 임명한 것 외에 청와대 인사라인 교체,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전환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도 장외투쟁의 명분이다.

정책 사안을 국회에서 논의하지 않고 반대를 위해 장외로 나가는 것은 명백히 반의회주의적 행위다. 장외투쟁은 국가권력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여 반대나 비판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때 약자와 소수자가 주권자의 민의에 의지하여 벌이는 독재시대 때의 정치적 시위의 형태다. 그러나 한국당의 장외집회는 어떠한 여건도 충족되지 않은 반대를 위한 반대다.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집권세력은 수구야당에게 반정치의 명분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은 후보 임명에 반발하는 수단으로서 장외투쟁이 적절한가의 여부를 떠나 여권은 보수야당에 공격의 단서와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총선 1년을 앞두고 정치는 양비론에 입각한 기존의 적대와 증오의 정치로 회귀했다. 거대양당제로 복귀한 정치 패러다임에서 유권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적대와 극단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편견을 증폭시킬 때 집토끼를 지킬 수 있다는 정치문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은 '촛불'과 '적폐청산'의 저작권자로서의 위상도 상실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도덕적·정치적 명분의 우위의 실종에 직면하고 있다.

청문과정에서 흠결이 제기되었던 후보자들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인식에 토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여론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단순히 인사 문제뿐만이 아니라 촛불 민심에 의해 대안부재로 선택됐던 청와대와 집권세력은 이미 좌파기득권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진보 유권자들이 '그래서 자유한국당을 찍을거야?(그자찍)'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역시 민심에 반응하지 않는 둔감성을 의미한다. 이대로 집권세력의 정치적 감수성이 발동되지 않는다면 '그자찍'(그래서 자유한국당을 찍을거야?)은 실제 '그자찍'(응 그래서 자유한국당 찍을거야)이 될 수도 있다.

집권 후 3년 만에 치러질 내년 총선의 프레임은 역시 정권심판론이다. 선거민주주의에서 민의를 거스르는 정권이 선거경쟁에서 이길 수 없음은 자명하다. 국민에 반응하지 않는 정권은 민주적 책임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고, 이는 당위와 규범의 측면뿐만이 아니라 실제 선거경쟁에서의 승리도 담보하지 못한다.

선거프레임이 회고적 투표냐 전망적 투표냐의 선택은 국민이 하지만 근거를 제공하는 측은 집권 측이다. 정권심판론을 거대야당 심판론의 프레임으로 바꾸는 국면 전환은 단순히 정치공학에 기인하지 않는다. 시민에게 얼마나 겸손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느냐의 반응성에 있다. 자유한국당의 퇴행적이며 반동적 색깔론은 민심과 동떨어진 집권 측의 인식의 틈새를 파고드는 법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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