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아모르파티

이한구

발행일 2019-05-08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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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 띄우는 일본정부 '또 한번 굴기' 갈구
고단한 현대인, 삶 포기하는 사례 비일비재
자본주의는 서민의 인간미 강퍅함으로 바꿔
'자신의 운명 사랑하라' 니체의 당부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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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일본정부가 새 시대를 맞이했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부친인 아키히토(明仁)에게서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일세일원(一世一元)의 연호도 5월 1일부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일본인들은 신왕(新王) 즉위를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일왕은 통치는 하지 않지만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인 탓이다. 일본 재무성은 1만엔, 5천엔, 1천엔권 지폐 속 인물들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2024년에 새로 선보일 1만엔권에는 '일본자본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시부자와 에이이치(澁鐸榮一, 1840~1931)를, 또 5천엔권에는 여성 교육 개척자인 쓰다 우메코(津田梅子, 1864~1929)를, 1천엔권에는 일본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 柴三郞, 1853~1931)를 각각 확정했다. 일본국민들은 또 한 번의 굴기( 起)를 갈구하고 있다.

주목되는 인물은 '논어와 주판'(1927)의 저자 시부자와 에이이치이다. 그는 한국 역사상 종이돈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초상은 1902년부터 일본 제일은행이 한국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1엔, 5엔, 10엔짜리 3종의 은행권에 처음 등장했었는데 1세기만에 일본 최고액권에 다시 부활했다. 당시 제일은행 총재였던 시부자와는 한국의 일본 식민지화를 촉진한 핵심인물이자 일본에서 미즈호은행, 도쿄가스, 도쿄화재해상보험, 데이코쿠호텔, 도쿄증권거래소, 기린맥주, 치치부철도 등 500여 기업의 설립 및 경영을 주도했다. 그러나 메이지(1868~1912) 중기부터 다이쇼(大正, 1912~1926)에 걸쳐서 빈민가의 존재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됐다. 도쿄에는 이전부터 만넨초, 다니야, 시바 신모우초 등 빈민촌과 곳곳에 거지굴이 있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가난은 게으름 혹은 팔자로 치부된 때문이다. 그런데 공업화와 함께 도시빈민들의 숫자가 급속히 불어난 것이다. 자본주의는 서민들의 인간미 넘치는 삶을 강퍅함으로 바꾸었다.

현대인들의 삶은 훨씬 고단해서 삶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캐나다 최북단 혹한의 땅인 누나부트 준주(準州)의 주도 이칼루트는 세계최고의 청소년 자살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붙박이로 살아온 이누이트인 위주의 자치도시이나 살벌한 자본주의 문화에 적응이 쉽지 않은 터에 자신의 미래마저 불투명한 때문이다. 한국의 청춘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8년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 당 25.8명으로 OECD 35국 중 최고인데 특히 청년층의 자살이 두드러진다. 10~39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상당한 경비에 고단함도 불사하고 해외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구걸(?)하는 한국의 젊은 취업 노마드(유랑민)들이 점증하니 말이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자신들이 부모세대보다 못할 것이라며 불안해한다. 외국기업의 국내 이주 감소와 국내기업들의 국외 엑소더스가 결정적이다. 최근 10년간 국내기업들의 해외직접 투자액이 255조원에 달한다. 지난 한해 생산공장 해외이전 금액만 55조원이다. 국내시장은 협소한 반면에 무한경쟁과 보호무역 강화가 한국기업들의 국외탈출을 부추기는 것이다. 향후 국내 일자리 전망도 밝지 못하다.

전 세계 대다수 엘리트들은 무한경쟁에 따른 물가안정, 교역확대, 기술혁명 등을 들며 세계주의의 탁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야말로 인민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진실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안정되면 뭐하나, 서민들 주머니에 돈이 말라가는데. 2016년 2월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따르면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미국인 6%, 독일인 4%, 영국인 4%, 프랑스인 3%에 불과했다. 절대다수의 세계시민들은 세계화가 선택받은 극소수에만 좋다고 믿는다.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베넌은 201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주의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배를 갈라서 아시아의 중산층을 키웠다"며 분노했다.

양극화 확대와 L자형 내수경기, 기술혁신에 따른 일자리 대량감소 우려 등 세계화의 덫은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할 과제이나 한국은 기댈 곳이 수출밖에 없어 더 걱정이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e Fati)'는 철인 니체의 당부에 눈길이 간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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