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어벤져스와 초원의 집

전호근

발행일 2019-05-07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예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에 열광
원더우먼등 에피소드는 기억 안나
가족이야기 다룬 '초원의 집' 인상
공동체의 평화, 영웅의 헌신 아닌
가난한 사람 협력으로 지켰기때문


2019050601000401700018511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마블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6일 한국 관객 수 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동명의 시리즈뿐 아니라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할 전망이란다. 영화의 줄거리는 기존의 히어로물과 별 차이가 없다.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아이언맨, 토르, 헐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등 이른바 슈퍼히어로들이 한 팀이 되어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매번 같은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늘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그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개인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영웅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다만 전에는 탁월한 히어로 한 명이면 너끈히 지구를 지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큼 악의 무리도 힘이 커져서 한 명으로는 턱도 없다. 이른바 드림팀을 이뤄서 단체로 달라붙어야 간신히 이기는 지경이 된 것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자주 보았는데 중학생 무렵에는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 주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매주 빼놓지 않을 정도로 즐겨 보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단 한 개의 에피소드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매번 지구를 구하는 식상한 이야기가 반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당시 미국 드라마 중 서부 개척시대의 가족이야기를 다룬 초원의 집은 그다지 자주 보지 않았는데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그중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느 날 주인공 소녀의 아버지가 거부였던 먼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게 되자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심상찮은 변화가 일어난다. 아버지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우를 받는가 하면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계가 소원했던 사람들까지도 그와 친하게 지내며 호감을 사려고 애를 쓴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은 이런저런 금전적 어려움을 하소연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마을의 목사까지 교회에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기부를 부탁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럴 때마다 주인공 아버지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고 마을 사람들은 좋은 이웃을 두었다고 흡족해한다.

꿈은 거기까지였다. 먼 친척은 거부이기는 했으나 부채가 상속액보다 많아서 막상 상속을 받고 보니 주인공 아버지가 도리어 채무를 변제해야 할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친척이 살던 동부에서 변호사 일행이 찾아와 주인공 아버지에게 친척의 채무 변제를 요구하며 집과 토지와 가재도구 일체를 경매 처분하겠다고 통고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재산이 하나 둘 경매에 부쳐지는데…. 물건이 경매에 나올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1센트!'를 불렀고 더 높은 금액을 부르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물건이 차례차례 1센트씩에 팔려나간다. 책상도 1센트, 집도 1센트, 농토도 1센트….

동부에서 온 일행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고 주인공 아버지는 완전히 파산했다. 부자가 되는 꿈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가 싶었을 때 반전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낙찰받았던 모든 물건을 주인공 아버지에게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고 주인공 소녀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엔딩 신이 이어진다.

수십 년이 지난 이 이야기를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까닭은, 공동체의 평화는 부자의 지갑이나 영웅과 드림팀의 헌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돕는 데서 지켜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대사가 궁금한 건 나도 어쩔 수 없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호근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