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모란이 피기까지는

권성훈

발행일 2019-05-07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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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1903~1950)

권성훈(새사진201901~)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인 모란은 5월에 개화한다. 이 꽃은 예부터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오면서 왕실에서 왕비나 공주와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 모란무늬가 들어갔으며, 가정집의 수병풍에도,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이 새겨졌다. 특히 미인을 말함에 있어서 복스럽고 덕 있는 미인을 활짝 핀 모란꽃과 같다고 할 정도로 모란은 여성성이 강한 이미지다. 모란꽃을 기다리는 마음은 여성을 그리워하듯 기다리며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릴 것을 알면서도 그 숨결과 함께 한다. 이른바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마는 것이지만 단념하기 보다는 또 다시 모란과 더불어 올 봄을 1년 동안을 잊지 않고 가슴을 내어준다. 당신의 사랑도 시든 자리에 모란처럼 피어날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 안에는 수많은 불빛이 빛나듯이 그렇게 피어났다가 시들어버린 시간들이 응집되어 있기에, 슬픔도 찬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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