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저널리즘: 권력에게 질문하기

이충환

발행일 2019-05-1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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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회피·거짓말 하는 권력에 '물음'은
그들의 부당함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
물러난 인천경제구역청장의 속내 편지글
'사퇴이유' 궁금증 풀어주는 언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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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두 편의 저널리즘 영화가 있다. 2015년 같은 해에 미국에서 제작됐다.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했다. 캐스팅과 작품성이 빼어나지만 둘 다 한국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토마스 매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성공한 취재의 서사시다. 지난 2002년 가톨릭 보스턴 교구의 사제들이 저지른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파헤친 미국 3대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취재와 보도 실화를 토대로 제작됐다. 지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종교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끈질긴 취재정신으로 파헤치고 들어가 마침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는 이듬해 이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영화 제목도 그 팀의 이름을 땄다.

반면 제임스 벤더빌트 감독의 첫 작품 '트루스(Truth)'는 실패한 취재의 회고록이다. 에미상 수상에 빛나는 미국 CBS 저널리스트 메리 메이프스의 회고록 '진실과 의무: 언론, 대통령, 그리고 권력의 특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아들 부시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CBS 탐사보도프로그램 '60분'은 간판앵커 댄 래더를 앞세워 부시의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하지만 오보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그 여파로 월터 크롱카이트의 후임으로서 24년 동안 'CBS 이브닝뉴스'를 이끌어온 댄 래더가 앵커직에서 물러나고, 메리를 비롯한 팀 전원이 해고된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보스턴 글로브의 새 편집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분)은 현존하는 지역 최고권력인 추기경에게 말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악한 교회권력을 추적하는 현장기자 마이크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분)의 외침은 간명하다. "이걸 밝히지 않으면 그게 언론입니까?" 사과가 몇 개 썩었다고 사과 상자를 통째로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며 조직적 은폐를 시도하는 권력의 속성을 팀장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 분)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시스템이야. 시스템에 집중해야 해!"

비록 보이지 않는 권력시스템에 패하긴 했으나 '트루스'의 저널리스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질문'이다. 오보의 당사자로 낙인찍힌 메리(케이트 블란쳇 분)는 "처음부터 질문하지 말았어야 했어…"라며 자조하지만 진심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댄 래더(로버트 레드포드 분)는 후배 저널리스트에게 질문이야말로 저널리즘의 핵심임을 확인시켜준다. "질문을 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네.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일이라 하고, 어떤 쪽에서는 편파적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질문을 멈추는 순간 미국인들은 패배하는 것이네." 영화의 끝부분, 메리는 저승사자 같은 조사단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자신의 의무를 다했냐고 물었을 뿐이에요."

두 편의 영화처럼 저널리즘은 권력에게 묻는다. 감추고, 회피하고, 거짓말하고, 교활한 술수를 부리는 권력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질문은 부당하고 과도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저널리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평상시에도 가장 효과적인 견제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중앙권력이든 지방권력이든, 종교권력이든 세속권력이든, 시민사회권력이든 노동단체권력이든, 심지어 저널리즘이 갖는 스스로의 권력까지 우리의 공동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권력이 다 질문의 대상이다. 이들 권력에게 제대로 질문하지 않거나 질문하지 못하는 저널리즘은 가짜 저널리즘이다.

며칠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사퇴(辭退)했다. 퇴임식을 대신해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속마음을 헤아려봄직한 문장을 남겼다. "꽃이 진 자리는 열매가 맺혀야 생명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할 말이 많으나 꾹, 꾹, 누른 거겠지. 그가 왜 물러나는지 궁금해하는 시민들이 있다. 하지만 지역언론 어디고 속 시원히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데가 없다. 오히려 억측만 키웠을 뿐이다. 경질(更迭)의 칼을 휘두른 권력에게 제대로 질문하고, 그래서 돌아온 답변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들려준 언론이 없다. 근래 이 지역사회에서 그이만큼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공직자가 또 있었는가. 없었음에도 '질문'하지 않았는가.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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