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국가의 길, 국민의 길

윤상철

발행일 2019-05-14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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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가치관 따라 '정부개입' 차이
착취보다 포용적 경제 성장에 유리
집단주의 성향 강해도 성공한 한국
우리 사회 '국가가 분배 주도' 요구
자본·민주중 한쪽 희생해야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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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배링턴 무어의 저서,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은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테제로 요약된다. 부르주아계급의 존재가 민주주의, 독재, 그리고 파시즘의 경로를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물론 현대의 확장적 대의민주주의는 여기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역할이 더해진다. 이후 남미, 동구, 아프리카의 '제3의 물결' 민주화를 지켜본 정치경제학자들은 "국가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고 주장한다. 즉, 계급 간의 투쟁으로 국가가 불안정하면 민주주의도 자리 잡기 어렵다는 말이다.

국가는 민주주의 정치만 제도화하는 게 아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공저에서 경제학자 대런 애스모글루와 정치학자 제임스 로빈슨은 "우리 이론의 요체는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와 번영의 관계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신기술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포용적 경제제도는 경제활동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하는 착취적 경제제도에 비해 경제성장에 훨씬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즉, 포용적 국가 없이 경제적 번영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제시한 사례는 아니지만, 미국에 비해 최대 3배의 셰일가스 매장량을 가진 중국이 그 생산량에서 훨씬 못 미치는 배경에 대해서도 포용적 국가제도가 거론된다. 지진 빈발 혹은 물 부족과 같은 자연환경적 요인보다는 셰일가스의 개발이익 분배와 같은 제도가 민간의 창의적 개발의욕과 기술개발에 큰 격차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국가인가의 문제이다. 자유주의자인 김정호 교수에 따르면 토지의 소유제한, 분배 등 경제적 헌법조항을 가진 나라들은 주로 사회주의 혹은 저개발국들이고,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세세한 정부개입조항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차이가 국민들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고 추정하면서, 전자의 국가들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후자의 국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개인주의적 시민들은 국가의 개입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세계관을 가진 반면, 집단주의적 시민들은 집단적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적 발전의 경험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더 심화시키는 역의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집단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OECD에 들어간 나라들이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멕시코 그리고 대한민국 등이고, 이 국가들이 어떠한 정치체제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이후 어떠한 경로를 밟아가는가를 살펴보면 그 인과의 방향을 판단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더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저자인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의 현대사를 '힘=문화'라고 생각하는 입장과 '힘=철'이라고 생각하는 입장 간의 쟁투로 보고 있다. '힘=문화'로 보는 전통적인 유교 사대부적 입장에 반해, 후자에 선 이들은 공업화와 산업화를 추진하고 국력을 기르는 것은 국가의 존망과 관계된다고 생각하고 '하면 된다'는 슬로건을 제창하고 효율적인 통제를 위하여 군사적인 힘을 강화했다고 보고 있다. 집단주의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이유일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집단주의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인 한국사회가 민주주의적인 대의제를 통하여 국가권력을 재생산하고 있다. 군사정권이나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이 사라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민 대중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만들어내는 국가체제는 자본주의적, 개인주의적 성장주도체제라기보다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적 분배주도체제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가의 발전전략에 이끌려왔던 우리 사회는 국가가 다시 분배를 주도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발전과정이 기적인 이유는 국가와 경제의 파국을 막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동시적, 순차적 발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그 적절한 조합이 아닌 어느 한 쪽을 희생시키면서 다른 쪽을 선택하는 국면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칼자루는 국민에게 쥐어져 있다.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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