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독재타도' 라는 거짓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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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체가 '독재시대' 아닌 증거
모순 알면서 다른 속임수 있기때문
근거없는 정치공세라는 것 알지만
소속집단 띄워줘야 한다고 믿는식
위기의 순간 국가의 역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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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요즘 일부 정치인이 '독재타도'를 공공연히 떠벌리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진짜' 독재시대에 교육을 받았고 독재를 몸으로 경험하며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자신이 말하는 독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자유당 시절에는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에서 수만 명을 죽였고, 유신시절에는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하고 종신집권을 꿈꿨으며, 군사정권에서는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 죽이고 반정부 인사들을 잡아다 간첩으로 조작했다. 그때는 '독재'라는 말 자체가 금기어였다.

그 '진짜' 독재시기에는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독재타도'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공개석상에서 마이크로 떠들고 있다. 정권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국민을 모욕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독재타도'를 외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시대가 독재가 아니라는 증거인 셈이다. 목소리 높여 외치는 그들 자신이 이런 모순을 모를 리 없다. 이 모순을 뻔히 알면서도 거짓 '독재타도'를 소리 높여 외치는 데에는 다른 속임수가 있기 때문이리라.



누구나 독재가 나쁘다는 건 잘 안다. 과거 역사에서 독재는 '민주주의'의 적이며 인권을 유린한 악마였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악마적 이미지를 현재의 정권에 씌우려는 것이다. 독재정권의 후예라는 숙명적 신분을 세탁하고, 역으로 자신에게 덮여있던 가면을 벗어 자신의 적에게 뒤집어 씌울 수 있다면 그건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자기의 도덕적 결점을 희석하고 상대를 부도덕한 자로 몰려는 '프레임'을 설계한 듯하다. 이럴 때 진실이나 사실확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우기고 나면 승리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선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임이라고 작정한 것 같다.

독재의 반대는 '민주주의'일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 등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책임과 의무이다. 즉 마음대로 할 수는 있지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하다. 민주주의가 무제한의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그래서 권리와 의무가 조화를 이루도록 애써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자기만의 이익을 극대화 하고 싶어 하기에, 그 경계를 늘 염려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는 사회는 일부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독재로 쉬 빠지게 된다. 민주와 독재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그런데 '독재타도 프레임'을 보며 나는 보다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서 우리의 의식을 결정하는 기제가 매우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노동 중심의 효율성은 이제 더 효력을 갖지 못한다. 지금은 각 개인이 무한선택권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를 경계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상관할 바가 아니므로 거기에 어떤 가치 판단도 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타자와 공동체를 해체하고,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 추구하게 만든다.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스스로를 '내 집단'에 가두는 '자기 구속'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예컨대,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내가 다니는 교회만은 예외가 되길 바란다. 오랫동안 독재권력에 빌붙어왔다는 지적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내가 속한 검찰이 권력을 나눠주는 것에는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독재타도'가 분명히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내가 믿어온 보수세력을 위해 밀어줘야 한다고 믿는 식이다.

이 위기와 불안의 순간에 국가의 역할이 궁금하다. 마침 우크라이나 대선 소식이 들린다. 73%라는 압도적 지지로 코미디언 출신의 젊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취임하자마자 썩은 국회를 해산하고 내각을 개편하겠다고 일갈했다. 먼 나라 이야기지만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정한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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