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소선후: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안다

철산 최정준

발행일 2019-05-2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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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두어보면 절실히 느끼는 주제가 수순(手順)이다. 바둑돌을 동일한 여러 지점에 놓더라도 그 순서를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대마가 죽기도 하고 미생마가 살아나기도 한다. 나중에 둘 돌을 먼저 두어도 문제고 먼저 둘 돌을 나중에 두어도 문제다. 곡성이란 영화의 한 장면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른바 우선순위의 문제는 반상에서 놓아지는 흑백의 돌이 가는 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길에서 부딪히는 문제이다. 대학이란 고전에서는 이에 관해 사물(事物)의 틀을 가지고 생각해보라고 알려주고 있다. 사물에서 물(物)은 물건이고 사(事)는 일이다. 철학적 차원에서 보면 물건은 존재에 해당하고 일은 작용에 해당하니 존재와 작용의 문제이다. 대학에서는 모든 존재를 나무로 표현하여 공간적 의미를 대표하였고 모든 작용을 나무의 작용으로 표현하여 시간적 의미를 대표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무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고(物有本末) 그 작용에는 마침과 시작함이 있으니(事有終始) 이런 틀을 가지고 파악하다 보면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지 알게 되는데(知所先後) 그때가 돼서야 도(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則近道矣)."

나무를 보면 땅속에 묻힌 부분이 있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이 있는데 묻힌 부분이 근본으로 먼저이고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오히려 지엽적인 것으로 나중이다. 날이 풀려 봄이 오면 나무에서 싹이 나니 먼저이고 추워져서 겨울이 오면 나무의 정기가 뿌리로 돌아가니 나중이다. 그러나 이건 전체적이고 기본적인 선후일 뿐이고 진정한 선후는 그때마다 달라진다. 봄철의 나무는 꽃을 피우는 것이 중하고 가을철의 나무는 열매를 맺는 것이 중하다. 선후를 안다는 것은 고인들이 강조한 시중(時中)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착착 들어맞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대학이란 고전에서는 그와 관련해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나는 지금 어느 철에 무슨 나무일까?"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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