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봉준호 영화'

이영재

발행일 2019-05-27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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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말께, 경인일보 편집국에 더벅머리 청년(?) 두 명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자신은 '플란다스의 개'를 만든 "감독 봉준호"라고 했다. 또 한 명은 훗날 '해무'를 감독한 심성보. 데뷔작이 흥행하지 못했지만, 평단의 찬사 때문이었는지 봉 감독은 자신감에 충만 돼 있었다. 이들이 경인일보를 찾은 건 '화성 연쇄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화성 사건을 다룬 경인일보의 기사가 가장 풍성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당시 기사와 사진 자료 등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역대 한국영화 100편을 뽑을 때 늘 최상위에 올라있는 '살인의 추억'은 그렇게 탄생했다. 525만 명을 동원한 이 영화로 봉준호는 한국영화를 이끌 차세대 감독으로 우뚝 섰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사상 첫 황금종려상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수상의 의미는 더 크다. 보통 세계 3대 영화제로는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를 꼽는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7년 만의 쾌거다. 영화제 대상 수상을 올림픽 금메달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의 본고장에서 한국 감독이 해외 거장 감독들의 영화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대상이라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봉 감독이 추구했던 영화의 세계는 '불합리한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대학 시절 만든 단편영화 '지리멸렬'에서부터 봉 감독은 교수 법조인 언론인 등 지도층의 위선과 허위를 들추며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국제적 명성을 얻은 후 만든 '설국열차'의 열차 안 세상은 절대 평등하지 않은 부조리한 세상이다. 패배자들로 가득한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가 폭동을 일으켜, 고위층들이 모여 있는 가장 위 칸으로 돌진하는 것은 불평등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에 대한 상징과 은유의 표현이다.

'기생충' 역시,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빈부격차' 문제를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개성 있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2세 때 감독을 꿈꾸었던 봉준호는 단 7편의 장편 영화로 '봉준호 영화'라는 나름의 장르영화 계보를 만들며 세계적 감독이 됐다. 이제 봉준호를 선두로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 나홍진 감독 등이 어우러져 한국영화는 바야흐로 '풍요의 시대'를 맞게 됐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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