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우국의 시절, 정치적 대타협의 촛불을 켜자

윤인수

발행일 2019-05-29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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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정치 사제들은 오늘도 격렬한 소탕전
우여곡절 겪은 국민들이 나랏일 근심·염려
전례없는 정파 전면전, 심각한 번아웃 증후군
지식인과 한마음으로 '기구' 결성할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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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위원
이념의 제단에 영혼을 고박(固縛)당한 좌우 정치 사제들은 어제도 오늘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격렬한 소탕전을 벌인다.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의지로 그들의 진영에 가담했지만, 그들이 목을 매는 전쟁의 이유는 모호하다. 국민들은 최근 깨닫고 있다. 좌우 전쟁은 정의롭지도 않거니와 막대한 전쟁 후유증만 남겼다. 삶은 팍팍해졌고 나라의 기운은 시들어간다. 좌우 사령부의 지휘에 따르다 보니 개인과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 이제 민심은 한 줌도 안되는 좌우 정치사제들이 벌이는 전쟁을 의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우국(憂國)의 시절을 관통하고 있다. 국민들이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한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이 걸어온 산업화와 민주화 역정의 고비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국민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정치세력의 대립을 대범하게 여겼던 국민이다. 수많은 위기에 단련돼 북한의 웬만한 도발에는 눈도 깜박이지 않던 국민이다. 그 국민들이 나라 걱정을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개별적 직감이 모여 위기감은 실체가 되어가고 있다.

위기의 진앙은 정치다. 적폐청산. 방향은 옳았지만 방식은 의문을 낳았다. 제도와 관행에 집중돼야 할 청산의 방식이 사람과 정당 이념을 겨냥했다. 진보 진영과 사람에 의한 보수 진영과 사람의 청산으로 변질됐다. 그 결과 적폐청산은 원한만 쌓았다. 보복의 비례성과 대칭성을 강화했다. 진보에 당한 만큼 갚아주기 위해 집권해야 한다는 보수의 복수심은 무섭다. 아니라고? 나는 술자리에서 자주 목격했다. 철없는 소리가 틀림없고 철저하게 배격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보수의 심연에 깔린 원한과 보복심리는 발화를 기다리는 또 다른 정치폭탄이다.

진보 진영은 이를 잘 안다. 그래서 20년 100년 장기집권을 강조한다. 뻔뻔하다는 비판과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밟고 있는 페달을 멈출 수 없다. 문재인 정부 환경부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문체부 블랙리스트와 다르다. 전 정권 국정원 댓글조작을 처벌한 사법은 정의고, 김경수 댓글조작 관여를 처벌한 1심 재판부는 불의다. 삼성은 유죄 증거가 나올 때까지 수십번이라도 압수수색을 해야 할 적폐 재벌이지만, 민노총은 폭력행위도 용인해야 할 정의로운 단체이다. 경제가 위기라는 언론과 여론을 향해 위기를 강조하는 것이 위기라고 답한다. 집권여당의 차기 총선 제갈량 양정철이 정보수장 서훈과 장시간 만났다 들켰다. 민망해 입 닫는 대신 준엄하게 언론을 꾸짖는다.

이건 전쟁이다. 좌파 진보는 멈추는 순간 동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페달을 쉼 없이 밟는다. 우파 보수는 흉중에 보복의 칼날을 숨긴 채 익숙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장외투쟁을 벌인다. 전쟁 중에 발생하는 패륜적인 언행과 그에 따른 비난여론은 전쟁 수행 과정의 부수적인 피해로 치부한다.

전례없는 좌우 정파의 전면전으로 대한민국은 심각한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는 요격이 불가능하다는데, 요격할 대책은 없고 발사체냐 탄도미사일이냐 정쟁만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한국 경제의 가랑이를 찢어낼 판인데 우리 경제는 실용의 경쟁이 아니라 이념의 대립으로 신음하고 있다. 미국과는 대북외교 분야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일본과는 총성 없는 외교전쟁 중이며, 중국의 대한민국 하대(下待)는 급기야 지명을 바꾸라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마당에 외교관은 국가기밀(정상회담 통화내용)을 누설하고 정부와 외교부는 야당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과 외세의 도전은 날카로운데 우리의 응전은 더디고 한가하다. 내부의 정치 투쟁으로 국가의 위기대응 능력과 국민의 응집력은 탈진됐다.

좌우가 대치하고 전쟁하면 정치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 모두 패자가 돼 국가를 위협한다. 좌우가 협력하고 경쟁하면 정책 보정의 선순환을 통해 모두 승자가 돼 나라를 반석에 올릴 수 있다.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좌우 정치적 대타협이 절실하다. 우국의 시절이다. 좌파와 우파의 상식적인 지식인들과 국민들이 우국충정의 한 마음으로 정치적 대타협 기구를 결성할 때가 됐다. 촛불을 다시 켜도 좋다.

/윤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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