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막말의 정치학과 언론

유성호

발행일 2019-06-05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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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노출 안되면 불안한 정치인들
멋진 말보다 요란한 뉴스거리 '골몰'
언론, 편승·침소봉대 기사화 자제
끊임없이 비판 '언어 중요성' 강조
사회갈등 통합·조정역할 책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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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생각해보면 지난날의 정치지도자들은 기억에 남을 명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가령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YS) "역사는 우리에게 진실만을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 앞에 무릎을 꿇는다."(DJ)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JP) 등 그때그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고 역사의 물줄기까지 바꾼 정치인들의 어록은 이른바 3김정치의 폐해에 대한 끝없는 강조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의 아우라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매체 조건이 전혀 달라졌고 국민들이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 또한 급변했다. SNS에 하루라도 나오지 않으면 대중들 뇌리에서 지워질 것 같은 불안감이 정치인들에게 생겨났고, 자신의 존재증명에 필요한 말들을 세심하게 준비하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의제도 달라지고 상황도 변해간다.

그러다 보니 가슴을 울리는 멋진 말보다는 이른바 막말을 통해 요란한 뉴스거리를 만드는 데 정치인들이 골몰하게 된 것도 같다. 대상으로 삼은 이들의 인권을 감안하지 않고 뱉는 비하의 말들,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속어와 비어들, 어차피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가치들을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나누어 배제의 정치학을 구사하는 독선의 언어들, 성폭력의 잔재를 떨치지 못하고 남발되는 관습적 언어들이 우리 정치인의 품격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명언을 여럿 남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말은 그래서 음미할 만하다. 그는 정치인들이 왜 시를 가까이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면서 "권력이 사람을 오만으로 이끌 때 시는 그의 한계를 일러준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영역을 좁힐 때 시는 그에게 자기 존재의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일깨워준다. 권력이 사람을 부패시킬 때 시는 사람을 정화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인간의 기본 진리들을 정립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이는 시라는 장르를 가까이하라는 말이기보다는 정치인의 자의식에 깊고도 보편적인 삶의 지표가 세워져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스스로도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라거나 "민주주의는 결코 최종적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지속적 희생, 그리고 의지에의 소명이요, 필요하면 그것의 방어를 위해 죽으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같은 어록을 남긴 케네디의 마음속에는 정치를 통한 자기실현은 물론 민주주의라는 더 커다란 준거가 충일하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발언의 전체 맥락보다는 귀에 거슬리는 부분적 표현을 침소봉대하여 기사 제목으로 삼는 언론의 태도 역시 온당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서 언론은 스스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키우고 맹목의 증오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성찰해야 한다. 언론이 정치인의 막말에 편승하고 또 그것을 대대적으로 기사 머리말로 뽑는 것은 그 점에서 최악의 상(像)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언론은 이른바 노이즈마케팅으로서 행해지는 계산된 막말, 품성의 결함으로 인해 발화되는 막말,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적대감의 막말 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또 그 당사자를 몰아세움으로써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언어'가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해가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갈등의 골이 깊은 이해집단 사이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자크 랑시에르에 의하면 정치란 '일치(consensus)'가 아니라 '불일치(dissensus)'를 생성해내는 행위이다. 일사불란하게 일치를 수행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권력에 의한 '치안(police)'일 뿐이다. 그러니 갈등과 반목 그리고 그로 인한 담론의 끝없는 생성과 유포는 민주 사회에서 퍽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모습이라고 해야 한다.

이때 정치권력과 언론은 이러한 갈등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극대화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무한 권력에 합당한 공공선으로서의 책임 말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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