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캐던 울 어머니
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
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서러움도 잠드시고
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을
삼삼이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양자(樣子)
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
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
긴 긴 날 배고픈들 그게 무슨 죄입니까
적막산 돌아온 봄을 고개 숙는 할미꽃
조오현(1932~2018) |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4월과 5월에 개화하는 할미꽃은 꽃대가 굽어서가 아니라 꽃이 지고 나서 열매에 가득 달린 흰털이 하얗게 센 할머니 머리와 비슷하여 생겨 난 말. 슬픔과 추억이라는, 꽃말을 간직한 할미꽃은 그렇게 꽃을 피우던 젊은 날을 지나 추억만 하얗게 매달고 있다. 그것도 들판의 '봄 양지 밭에'서 오지 않을 사람을 오래 기다려 온 듯이 '검은 머리'가 '희어'지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 기억하는가. 바로 당신 때문에 잠 못 이루던 그 사랑. '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기다림에 지친 삶'에서 언제든지 '삼삼이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으로서 '허리 굽은 꽃'이 되어 당신에게 오고, 당신은 '펼 수 없는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돌아가 돌아오지 않는 당신의 그리움은 미안한 마음에서 제다 '슬픔의 죄'가 되어 '긴 긴 날 배고픈' 추억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오늘도 적막한 너머의 고개를 넘어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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