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개소리'를 넘어

신승환

발행일 2019-06-1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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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알면서도 진실에는 관심없고
정파적 이익따라 지껄이기만 하면
문화·사회 붕괴 야만·폭력만 난무
정치·언론·법·종교계로 퍼지는 소리
새로운 계몽으로 '분열'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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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정치가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2005년 코미디언 콜베어가 '진실스러움'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이런 현상을 비꼬았다. '진실스러움'이란 사실이 아닌 데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보이는 주장을 말한다. 이런 인식은 몇몇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듯하다. 프린스턴 대학의 철학교수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관하여'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27주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는 척이라도 하거나 또는 자신의 말이 틀렸음을 알지만, 개소리꾼은 진실 여부와는 아예 별개로 행동한다. 그들은 진실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다만 자신의 정파적 이익에 따라 '개소리'를 지껄일 뿐이다. 철학자가 현실정치의 치졸함에 끼어든 것은 이런 '개소리'가 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올바름에 대한 관심조차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짜와 망상이 현실이 된다. 이런 현상이 일반화되면 그 문화는 결국 야만과 반인륜으로 치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정의나 공정, 연대나 배려 따위가 다만 언설에 그치고 혐오와 적대감만이 난무하는 것은 이런 결과 때문이 아닌가. 끊임없이 '개소리'를 말하다 보면 인간은 사라지고 다만 자신의 정파적 이익과 즉물적 욕망만이 정당화된다. 그때 그 문화와 사회는 부서지고 야만과 폭력만이 흘러넘칠 것이다. 그러니 작은 '개소리'라도 웃어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프랭크퍼트가 이런 도발적 글을 쓴 까닭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유럽 사회는 17세기 이래 역사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경제적 풍요와 함께 뒤이어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이끌어냈다. 이 놀라운 문화적 도약은 그 이전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그들의 세계관과 체제를 전 지구화 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유럽의 도약과 패권의식은 역사에서 보듯이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고, 야만적 전쟁과 식민주의로 얼룩지게 되었다. 유례가 없었던 제국주의의 야만은 유럽 사회에 내재해 있던 몸과 마음의 분열, 욕망과 도덕의 갈등을 도외시할 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혼란을 유럽은 계몽주의를 통해 합리성과 반성 철학으로 극복했으며 이로써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자유, 민주정과 자본주의를 보편적 윤리와 체제로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칸트에서 보듯이 계몽의 철학은 인간이 지닌 이성을 보편화하고, 이를 스스로의 규범과 지성에 따라 사용하는 성숙함을 강조한다. 이런 이성적 성숙함이 결국 역사적 진보와 인간다움을 성장시켜 나갔다. 수많은 모순과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서구 근대가 이룩한 성취가 현대 세계의 보편적 이념으로 작동하는 데는 이런 역사적 고뇌와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스스로 자유와 민주, 독립을 외쳤던 선조들의 목숨을 건 함성이 퍼져간 지 100년이 지났다. 이 정신과 규범을 현실로 만들지 못하면 우리 삶과 사회는 퇴행할 것이며, 그나마 이룩한 경제적 성취조차도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경제적 풍요를 얻었지만 삶의 의미는 어디로 갔는가. 더 많은 경제가 아니라 더 좋은 경제,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경제로 가야 함에도 다만 그들만을 위한 경제성장을 외친다. 공동선은 무너지고 개인의 이익만 남은 사회를 부추기고, 끊임없이 허상을 되풀이하는 수많은 '개소리'들이 우리를 몰아세우고 있다. 이 소리를 웃어넘기면 그들은 이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망상이 현실이 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될지는 너무도 명확하지 않은가.

근대 유럽이 그들 안에 내재한 분열을 계몽을 통해 극복했듯이 우리 역시 현재의 분열을 새로운 계몽과 공공성의 정신으로 넘어서야 한다. 다가올 시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그들에게서 오지 않는다. 우리의 길은 미답의 것이다. 그 가보지 않은 길을 이 '개소리'에 맡겨둘 수는 없다. 이 '개소리'는 정치를 넘어 언론과 법으로, 종교계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란 이름으로 이런 반인륜적 행태를 허용하면 그 행태는 곧장 사회적 일상이 된다. 혼란이 극대화되어 파멸이 가까워질 수도 있다. 그들이 과잉 지배하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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