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부고(訃告)기사를 읽다

이충환

발행일 2019-06-19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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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신문들 인간적 관심사로 열독률 높여
국내지면들 연표수준 못 벗어나 '무미건조'
이름과 숫자만 나열된 '납세고지서' 같기도
이희호 여사 기사 읽으며 관행 허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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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지난 10일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다. 언론들이 일제히 부고기사를 실었다. 경인일보도 '한국 여성운동 큰 별 지다'란 제목의 부고기사를 1면에 게재했다. 특히 인천판 1면 기사 '동일방직 여공과 함께 투쟁 여성운동 큰별 지다'는 인천지역 여성운동에 남겨진 고인의 발자취를 따로 짚어 인상적이었다. 2면에도 관련기사가 실렸다. 모처럼 부고기사가 1면과 속지에 함께 자리한 신문을 그날 나는 꼼꼼하게 읽었다.

사람의 죽음을 알리고 생애를 반추하는 부고기사는 언제 등장했을까. 언론학자 미첼 스티븐스가 쓴 '뉴스의 역사'(1997)에 단서가 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개막과 함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뉴스가 편지 형식의 문자뉴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뉴스레터(newsletter)'의 출현이다. 비잔틴 제국의 심장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던 오스만제국 술탄 모하메드 2세가 1481년 사망하자 뉴스레터가 소식을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콘스탄티노플에 사는 한 이탈리아인이 서유럽에 있는 자신의 동생에게 이 엄청난 뉴스를 편지의 형식으로 적어 보낸 것이다. 이 뉴스레터의 필사본들은 다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모하메드 2세가 죽은 지 2년 뒤인 1483년 이탈리아에서 웨일즈의 에드워드 왕자를 위해 프랑스어로 번역된 필사본이 현존한다.

부고기사가 이 땅에서 첫 선을 보인 건 1920년의 일이다. 이 해 4월 6일자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전 판서 이호석씨는 숙환으로 8일 통동 9번지 자택에서 별세하얏는대 14일 오전 10시 자택에서 발인하야 선산에 안장하고, 십오일 오후 5시 왕십리에서 수조(受弔) 한다더라." 조선일보는 1923년 5월 20일자 지면에 독립운동가 김인전 선생의 별세 소식을 이야기 형식의 부고기사로 게재했다. "한국노병회 소속 김인전씨는 삼일운동 이후로 상해에 건너와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우연히 토혈병에 걸려 여생을 하던 중 지난 십이일 오전 열한시 삼십분에 상해 동인의원에서 불행히 세상을 뜨다…"

1851년 창간 때부터 부고기사를 게재한 뉴욕타임스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9월 15일부터 연말까지 추모기사 '슬픔의 초상들(Portraits of Grief)'을 연재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남긴 짧은 추모의 글과 함께 3천여 명 희생자들의 프로필을 실었다. 미국사회는 퓰리처상으로 응답했다. 지난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선 그동안 자신들이 썼던 부고기사가 백인과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았다. 반성으로서 '간과된 여성들(Overlooked)'이란 타이틀로 인류사에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부고기사 시리즈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3월 29일자 인터넷판 첫 페이지는 특히 숙연하다. '유관순, 일제에 항거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란 제목의 기사는 "1919년 봄 평화적 시위에서 한 여학생이 집단적 자유를 갈망하는 한 민족의 얼굴이 됐다"고 추모했다.

부고기사는 세계적인 신문들에서 대부분 높은 열독률을 보인다. 교과서로 삼아도 될 만큼 훌륭한 문장을 갖춘 데다 사실에 바탕을 둔 인간적 관심사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인류사의 다이제스트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지면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연표(年表)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종종 객관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그마저도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인물 평가에 서툴고 인색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죽어서 기록된 한 인간의 생애는 그가 살아냈던 시대를 투영하는 소중한 사회사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르거나 간과하고 있다.

제대로 된 부고기사 대신 부고로 가득 채운 공간은 이름과 숫자만 나열된 '납세고지서'와 같다.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본사손님' 또는 '본사내방' 소식과 함께 우리 신문의 가장 권위적이고 가장 비민주적인 관행의 잔재이기도 하다. 낡은 울타리를 허물고, 공허한 허세를 떨쳐내면 거기서부터 우리 신문의 새 경계(境界)가 열릴지도 모른다. 이희호 여사의 부고기사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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