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정치시민교육이 필요한가?

윤상철

발행일 2019-06-25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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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민주화 과정보면 값을 치러야
반복할 필요 없지만 건너뛸 수 없어
한국사회, 방향·내용 합의 쉽지않아
재사회화된 시민, 자유 실현할 주체
가치 지탱할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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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주말에는 컴퓨터 앞에서 폭력예방교육을 받으며 보냈다. 양성평등기본법 등 여러 법률에 따르는 법적 의무로서 대학 교직원 모두가 연 1회를 이수해야 한다고 한다. 교육내용은 양성평등, 성희롱,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교육 등 5개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과목당 2시간 이상 지속되는 교육을 제한된 시간 내에 마치지 못하고 결국 비이수자로 남게 되었다.

교육을 받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유용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별로 와 닿지도 않는 내용으로 국가예산 낭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판단하기 전에 국가주도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방식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사회적으로 충분한 합의의 과정이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고, 더러 다른 사안들과 충돌하는 윤리적, 정치적 내용들을 국가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판단하고 이를 전파하는 방식이 자못 불편하다. 대부분 사회학적으로 재사회화에 해당되는 내용들이어서 더 조심스럽다.

서구의 민주화 과정을 돌이켜보면, 민주주의정치야말로 그만큼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진민주주의의 동요와 내파를 보면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나아가 양성평등의 쟁점들까지도 시민들의 의식 속에 쉽게 내장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슨 방안이 가능할까? 우리가 어떻게 인류보편적 가치에 동의해갈 수 있을까? 세계화의 시대에서 우리가 서구의 과거 역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건너뛸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압축적 정치시민교육을 주장한다. 정치인이 아닌 시민으로서 살기 위해서도 정치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고 및 정파, 그리고 그 집단적 극화가 심각하고, 정치적 가십을 정치로 혼동하고, 정치인들을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삼지만 동시에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사회에서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정치와 종교, 그리고 젠더를 금기시하는 고착된 한국사회에서 정치시민교육은 그 방향과 내용에 합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정치를 잘 알고 실천한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서 플라톤의 원취지와는 다르지만 그 시민적 버전인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치적 무지는 정치권력자들의 선거놀음의 대상일 뿐이다. 물론 정치에 대한 교육과 토론은 극단적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대화가 없으면 정치적 사고는 더 극화될 뿐이다. 탐욕스런 권력자는 스스로의 권력만을 추구하는 '총탄형 정치가'이거나 대중의 선호에 휘둘리는 '뗏목형 정치가'이거나 간에 시민들에게 바람직한 정치를 주지 않는다. 이 중간 어느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치시민교육의 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되, 타인의 생각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의 토론처럼 서로 비난만 하거나 딴전을 부려서는 안 된다. 상대는 생각을 달리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일 뿐, 제거되어야 하는 적폐일 수 없다. 우리는 대선 토론에서 특정 후보와 말하지 않겠다는 후보들처럼 일상을 살 수는 없다.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정답은 그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상대의 어떤 생각도 존중되어야 하고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정치인이나 정당은 우리가 선택하는 대상일 뿐, 우리가 동일시하면서 추종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우리의 대리인일 뿐이다. 우리의 미숙한 정치행위의 결과에 대해 직접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우지 말자. 아직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가기까지 우리는 서로 싸우거나 교육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포스트 자본주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제조업의 고용규모나 부가가치 생산이 낮지 않지만 더 확장될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탈산업사회라고 보기는 다소 성급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주변에 밀려오고 있다. 더 많고, 더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을 해결해내야 한다. 과거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던 주체들, 부르주아 혹은 프롤레타리아, 나아가 대중적 포퓰리즘도 더 이상 새로운 민주주의를 이끌 수는 없다. 정치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고 이후 재사회화된 시민들이야말로 이른바 포스트자본주의 시대에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등을 실현할 주체들이다.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는 평생의 직장도, 근대적 보호막으로서의 조직도 집단도 없다.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에 스스로 인류가 만들어낸 가치를 지탱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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