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돌림 당할까 봐', 경찰 역풍 초래한 고유정 현장검증 미실시 이유

손원태 기자

입력 2019-06-26 08:14:30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2019062101001672700082191.jpg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6일 오후 제주동부경찰서 진술녹화실에서 나와 고개를 푹 숙인 채 유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제주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의 초동수사를 맡은 경찰이 부실 수사 의혹에 휘말렸다. 

 

지난 25일 경찰에 따르면 고유정 사건의 초동수사를 담당한 제주동부경찰서 경찰관 5명은 지난 20일 경찰 내부 통신망 '폴넷'에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수사 관련입장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경찰은 사건 초기 고유정 사건을 타살 아닌 단순 실종 혹은 자살사건에 무게를 두고 수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우리 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해 일부 왜곡된 언론보도로 경찰의 명예가 실추됐다"며 "몇 가지 사실관계에 말씀드리겠다. 지난달 29일 피해자 유족이 펜션 옆에 있는 가정집 CCTV를 확인 요청해 확인하니 피해자 이동 모습이 확인되지 않아 범죄 혐의점이 의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혼한 부부가 어린 자녀와 있다가 자살의심으로 신고된 사건에 초기부터 강력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하라는 비판은 결과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비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부실수사가 있었던 정황이 드러나며,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사건 발생 현장인 제주 펜션 인근 CCTV 영상의 존재를 몰랐으며, 피해자 유족이 직접 찾아 제공한 뒤에야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지난달 27일 고유정이 범행 장소를 떠나며 쓰레기 종량제봉투 4개를 버린 사실을 미리 알았으나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피해자 유족이 쓰레기 처리시설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인한 후에야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고유정 범행 과정을 봤을 때 범행을 숨기기 위해 제주지역에는 시신을 유기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며 "펜션 주변에 버린 것은 범행 과정에 사용했던 이불이나 수건 등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고유정이 살인혐의를 인정한 다음날인 지난 7일 현장검증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 "피해자가 범행동기에 허위 진술로 일관하고 있었고 굳이 현장 검증을 하지 않더라도 범죄입증에 필요한 DNA,, CCTV 영상 등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라 현장검증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만적인 현대판 조리돌림'이라는 박기남 제주 동부경찰서 서장의 결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리돌림'이란 과거 죄인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드러내 고의로 망신주는 행위를 일컫는다. 

 

전문가는 "비록 경찰 내부망이라도 수사책임자인 경찰서장이 현장검증이라는 정상적 수사절차를 '야만적 현대판 조리돌림'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피의자를 보호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에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손원태 기자 wt2564@kyeongin.com


손원태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