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114]에스케이-3 선경직물 인수(하)

인수 한달… 27세 최종건 맨손으로 공장 소유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9-07-02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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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직물
선경직물은 1956년 설립 등기를 마친 후 1958년부터 '봉황새' 이불감이 전국적인 히트상품으로 떠오르면서 대기업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SK 제공

지가증권 13만환 모두 상환
공동매수인 권리포기 확보
중고 직기로 1·2공장 가동
양복 안감 '닭표' 부통령상
'봉황새' 히트 대기업 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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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은 부친으로부터 약간의 자금을 지원받아 차철순을 움직여 선경직물 인수준비에 착수한 결과, 1953년 7월 27일에 관재청으로부터 130만환에 불하를 허가한다는 것과 3주일 이내에 매각대금의 10%를 내고 계약을 체결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당시 쌀 한 말은 1천환으로 계약금 13만환은 쌀 1천300가마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불하대금이 예상보다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자 방구현은 동업을 포기했다.

최종건은 차철순 소유의 지가증권을 계약금으로 충당하고 차후에 차철순에 상환하기로 했다.

지가증권이란 정부가 농지 개혁 때 매수한 농지의 보상금 대신 지주에게 발행한 유가 증권이다.

1953년 8월에 계약금 13만환은 지가증권으로 납부하고 나머지 금액은 10년 분할조건으로 선경직물 주식 50만주 중 황청화, 김덕유 몫(각각 100주씩 소유)을 제외한 49만9천800주를 차철순과 공동명의로 계약했다.

>> 타고 난 '보스 기질'

이후부터 선경직물은 최종건 주도로 경영됐는데 운전자금은 선경직물의 고철을 팔아 확보한 돈으로 원사를 사들여 생산을 개시했다.

그런데 이 무렵은 전쟁 직후로 물자부족이 심각해 생산된 직물들은 생산과 동시에 전부 소진됐다.

최종건은 조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생산에 매진한 결과 선경직물 인수 1개월여 만인 1953년 9월 30일에 차철순에 지가증권 13만환을 전부 상환하는 한편 공동매수인 권리 포기각서까지 확보했다.

27세 청년 최종건은 거의 적수공권으로 1만2천평의 선경직물 공장을 소유하게 됐다.

"최 회장은 보스 기질을 타고난 행동가였다. 최 회장은 공사현장에서도 종업원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종업원들과 노는 자리에선 전혀 상하를 가리지 않는 최 회장이었다. 막걸리 파티라도 열렸다 하면 다 같은 친구요, 형이요, 아우였다."(선경40년사<약사>, 54면)

10월에 제1 공장 건물을 복구하고 선일직물과 동흥직물에서 중고 직기 60대를 구매해 설치했다.

1955년 8월에는 서울 휘경동 태창직물의 중고 직기 50대를 넘겨받아 제2 공장마저 복구했다. 선경에선 양복안감으로 쓰이는 인조견 능직을 생산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는 양복 안감은 대부분 재단 전에 물세탁을 해야 했으나 선경에서 생산한 제품은 물세탁 하지 않아도 됐기에 날개가 달린 듯 팔려나갔다.

이 무렵 국내 굴지의 인격직 메이커는 조선직물, 태창직물, 심도직물 등으로 선경직물은 지방에 소재한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1955년 서울 창경궁에서 개최된 '해방10주년기념 전국산업박람회'(10월 1일~12월 20일)에서 선경의 '닭표' 안감이 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국 유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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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직기로 제3공장 건설

한국섬유단체연합회 산하의 각 공장에서 출품한 면사와 면직물, 모직물, 인견 직물, 양단, 호박단, 빌로드, 아세테이트, 나일론 등 모든 섬유제품이 총망라된 가운데 '닭표' 안감이 인견부문에서 유일하게 상을 받은 것이다.

당시 산업은행은 박람회에서 수상한 업체들에 기업육성자금을 융자해주었는데 대통령상에는 500만환, 부통령상에는 300만환 등의 장기저리 자금이 제공됐던 것이다.

선경은 융자금 300만환으로 악성고리채 100만환과 선경직물 매수대금 중 잔금 91만환을 상환하고 나머지 100만환으로는 고급견직물을 생산하기 위해 일제 문직기(Jacquard) 25대를 발주해서 제3 공장을 건설했다.

문직기는 1930년에 프랑스의 자카드(Jacquard)가 발명한 것으로 만여 개에 달하는 종침(從針)과 횡침(橫針)의 조작으로 문양을 찍어내는 복잡한 직기이다.

1956년 3월 24일에 선경직물주식회사로 설립 등기했다. 1958년 5월부터 시판을 개시한 '봉황새' 이불감이 전국적인 히트상품으로 급부상하면서 선경은 서서히 대기업으로 부상해갔다.

1958년 11월에는 산업은행으로부터 대부받은 ICA자금 4만5천달러로 문직기 50대와 염색가공 설비를 갖춘 제4공장을 오픈했다.

해방과 6·25전쟁이 초래한 만성적인 물자부족에다 귀속기업 불하 그리고 엔지니어 출신인 최종건의 경영경험 등이 상승 작용함으로써 지방소재의 중소기업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던 것이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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