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차별 방관자, 기여자, 가해자

이완

발행일 2019-07-03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다름 공존·상생하는 '문화다양성'
평화 화합하자는 전세계 협약인데
구성원간 갈등·폭력 조장 일부언론
곳곳에 혐오·차별 씨앗 뿌리는 세력
대응 못하는 정치권… 모두 '가해자'

수요광장 이완2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며칠 전 너무나 노골적으로 인종 간 혐오와 갈등 그리고 폭력을 부추기는 한 인터넷 언론사의 기사가 있었다. 기사는 최근 인천시와 서울 일부의 붉은 수돗물 사태의 원인으로 근래 국내에 급격히 유입된 '이슬람 난민' 중 일부 '극단주의자' 소행일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내용이었다. 근거로 제시한 것은 익명의 정보당국 관계자의 발언으로 "붉은 수돗물 사태 원인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테러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보당국자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지만, 같은 기사에서 다른 공공기관의 담당자는 그 가능성을 일축하는 가운데, 기사의 제목은 놀랍게도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 "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 수도"' 였다. 매우 노골적이고 악의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다.

이 기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1923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을 떠올렸다고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지진 직후 퍼졌고, 당시에 학살된 조선인이 6천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끔찍한 대학살을 떠올리게 만드는 위 내용은 언론사의 기사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구성원간 혐오와 차별을 옮기는 혐오차별세력의 행동의 일환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그럼 유언비어를 유포하며 한국사회 구성원간 불신과 혐오 및 갈등을 양산하는 악의적인 행위가 펼쳐지고 있을 때, 제도와 정치는 무얼 했을까. 제도는 부재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해야 하는 정부 및 정치권은 최근 부천시의 사례에서 보듯, 혐오세력의 반대에 매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는 문화다양성 조례를 오랫동안 지역의 여러 단위가 함께 준비해왔다. 하지만 기독교계중 매우 일부가 중심이 돼서, 문화다양성 조례가 통과되면 이슬람, 난민, 동성애가 확산된다며 조례제정을 적극 반대했다. 결국, 지난 6월 25일에 이들의 항의로 부천시 시의원 28명 중 14명이 공동발의하고, 상임위까지 통과된 조례안이 본회 직전 자진 철회되는 굴욕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문화다양성이란, 한 사회나 국가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들이 서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모두가 평화롭게 화합하자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협약이다. 2001년 유네스코에서 회원국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문화다양성 선언을 했고, 국제협약이 만들어졌다. 한국도 가입은 물론, 2014년 문화다양성 법을 제정했다. 지역에서도 서울특별시, 경기도, 부산광역시 등 전국에 14개 시도와 교육청에서 문화다양성 조례가 제정되어 활발한 사업도 진행 중이다. 조례안이 특정 세력의 실력행사에 좌초된 것이 물론 이번만은 아니다. 하지만 매우 개탄스러운 점은 모두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차이를 존중하자는 전 세계적 약속까지도 소수 세력의 항의에 무산되었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도의회에서는 혐오표현 예방 및 대처에 관한 조례를 준비하고 지난 10월부터 정책연구와 토론회가 열렸지만, 도의회에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며, 경기도 이주아동 지원 조례안도 난민반대 세력의 반발로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세력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차별과 혐오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구성원 전체의 공익에 부합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특정 종교의 일부 세력에 계속해서 굴복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평화와 공존을 염원하는 다수 시민의 바람을 배반하고 기본적인 정의와 인권 실현이라는 본분을 다하지 못하여 차별에 방관하고 기여한 것이다. 기여 정도가 아니다. 정치는 우리의 삶이 보다 나아지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번 조례철회에 동의했다면, 모두가 결과적으로 혐오차별의 가해자다.

구성원간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는 언론, 한국사회 곳곳에 혐오와 차별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 다수 시민의 염원과 상관없이 이들에게 굴복하고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정치권, 결국 모두 혐오차별의 적극적 가해자다. 결국 평화와 공존을 염원하는 대다수 시민의 힘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이완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