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내부 투쟁 멈추고 밖을 바라볼 때다

윤인수

발행일 2019-07-0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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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 '열었다 조였다' 한국경제 조롱
日, 한일협정이후 청구 거부한채 경제제재
북, '통미봉남'… 트럼프의 '외교적 상상력'
우리를 한반도남쪽에 가뒀다는 직감에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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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위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땅을 밟는 장면은 역사적이었다. 1953년 6·25전쟁 휴전 이후 66년간 이런 장면을 목격하리라고 믿었던 한국인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기자의 역사적 오보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고, 독일은 갑자기 통일됐다. 역사는 한 국가와 민족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전과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옮겨놓기 일쑤다.

대한민국이 지금 역사적 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무겁다. 태풍의 눈은 맑고 고요해 태풍의 실체를 각성하기 힘들다.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 변동의 한 복판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만 그 사실을 모른 채 무심한 것 아닌가 해서다. 김정은을 판문점으로 불러낸 트럼프의 트윗은 단 몇 줄에 불과했다. 트럼프의 판문점 군사분계선 월경(越境)은 단 몇 분이었다. 김 위원장과 50여분 회동한 트럼프가 회동내용을 설명하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한 귀엣말은 30여초였다. 문 대통령이 이를 정리했다.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한 것"이라고. 6·30 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에서 벌어진 몇 토막 이벤트들이 모여 '북·미간의 사실상 종전선언'으로 귀결된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협상은 새로운 양상으로 진입한 모양새다.

대한해협에서도 역사적 변동을 재촉하는 불길한 동력이 싹트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족집게 처럼 집어내 경제제재에 나섰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 하는 일본산 소재 공급을 막겠다는 결정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국제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일본이 자국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는 자해적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결정에 대한 경제보복이다. 역사적 피해자인 우리가 일본의 정치·경제적 보복을 받는 가치의 전복이 황당하지만, 갈 데까지 간 한·일관계 자체는 생소한 현상이다. 이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촉발시킬지 예측하기 힘들다. 오만한 중국은 이제 경제협력의 대상인지 불분명해졌다. 시장을 열었다 조였다 하며 한국 경제를 애먹이는 수준을 지나 이제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선택하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세의 발호가 심각하다. 그 기세에 담긴 기운이 불온하다. 중국은 시장을 앞세워 우리를 조롱하고, 일본은 한일협정 이후의 청구를 거부한 채 한국 경제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상 유일한 동맹인 미국은 수시로 안보비용 청구서를 내민다. 문 대통령은 "그 상상력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으며 역사를 진전시킬 힘을 만들었다"며 김 위원장을 판문점으로 불러낸 트럼프의 외교적 상상력을 찬양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외교적 상상력이 대한민국을 한국인이 상상하지 못한 지경에 갖다 놓을까봐 착잡하다. 상상하지 못할 지경이 무엇인지 몰라서다.

우리를 둘러싼 외세의 기운이 우리를 한반도의 남쪽에 가둔 채 소외시키고 있다는 직감에 가슴이 답답하다. 북한을 비롯해 중국, 일본은 물론 혈맹인 미국까지 나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새롭게 결정할 역사적 변동을 밀어붙이는 듯한, 이 모호한 직감이 불쾌하고 불안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역사의 수레바퀴가 결정적인 한 순간을 향하기 위해 마지막 퍼즐 몇 조각을 맞추고 있다면 무서운 일이다.

이처럼 불길한 직감이 개인적 기우에 그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국가를 수호하는 일에 '상상'의 개입은 금물이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변동의 기운과 실체를 똑바로 확인하고 관리하고 대처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잠시 우리 내부의 투쟁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때다. 내부 투쟁으로 엉망이 된 나라에 불어닥치는 스산한 바람을 느낄 것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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