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총선이 개혁동력을 살릴 수 있을까

최창렬

발행일 2019-07-10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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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정치적 의사 대표성 '연동형 비례대표제'
후보 선정 객관·공정·투명성 확보 성패 달려
양당, 정개·사개특위 양분땐 누더기 될 수도
현실주의·권력정치 변화 정합성 제도화 필수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정치에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병존한다. 근대정치학의 시조라 불리는 마키아벨리는 권력정치의 불가피성을 갈파했지만, 정치에 현실주의만 존재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실과 이상, 실리와 명분이 잘 조화된다면 갈등의 조정이라는 정치의 본령에 가까이 갈 수 있다. 물론 권력구조와 정당체제의 형태, 역사적 배경과 정치문화, 경제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정치사회의 작동원리가 정해진다.

한국정치는 현실정치적 요인이 압도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이며, 사회적 소수와 약자가 과소대표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되고 정치개혁특위 기한이 8월 말까지 연장됐으나 내년 총선에 도입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시민 각 계층의 정치적 의사가 비례적으로 국회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다. 지금의 국회의원 출신 배경을 보면 고위공직자나 청와대 참모, 법조계, 정당인 등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수자나 청년, 노동의 국회 진출 비율은 현저히 낮다.

국회란 시민의 대표가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제도권 내에서 상충하는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맡은 대의기구이다. 그러나 특정 계층이 과다대표되고, 약자가 과소대표 되는 구조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가 주권자와 유리되고 자신의 특권적 지위에 안주하여 개인의 영달과 입지만을 탐하는 권력기구로 전락한 상황이 국민소환제 공론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선거공학에 익숙지 않지만 시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인사,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정치권에 충원되는데 기여할 수 있을 때 비례대표 숫자의 증원이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례숫자의 증원은 당 지도부나 중진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의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가 목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후보 선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투명성 확보에 성패가 달려있다. 만약 늘어난 비례대표 자리가 당 대표나 다선 의원의 자리보전에 활용되거나 계파 수장 등 파워엘리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차라리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지역구 숫자를 늘리되 전체 의원 숫자는 줄이는 한국당 안이 더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는 정치발전과 역행하므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거대양당에 의한 폐해는 새삼 지적할 일도 아니지만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양분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무늬만 연동형인 누더기 제도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민주평화당이나 정의당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 점을 간과할 수 없어서다.

내년 총선은 두 가지 점에서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선 지금의 정당의석 분포는 박근혜 탄핵 전의 민의가 반영돼 있다. 탄핵은 한국 헌정사에 중대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탄핵 이후의 민의의 명시적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에서 정치구도의 변화를 통해 어떠한 정당들이 등장할 것이며, 의석분포에 따라 희미해진 개혁동력 부활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둘째 지금의 정당구도는 정당 내의 불화와 갈등, 파편화된 다당제 등, 정치개혁 대상이다. 내년 선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와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서의 투명한 절차 등이 담보되느냐에 따라 정치개혁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현실주의와 권력정치에 함몰된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정합성 있는 제도화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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