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두 개의 자아(自我)

이진호

발행일 2019-07-1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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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 한쪽은 계획·다른쪽은 방해 '명령'
누구나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유혹 휘말려
인생의 진정한 실패자는 '희망 포기한 사람'
자신위한다면 '이야기하는 자아' 귀기울여야


이진호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나이가 들수록 TV 리모컨(리모트 컨트롤·remote control)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모처럼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거나 읽고 싶었던 책이라도 찾아보려고 하면, 어디선가 리모컨이 짠하고 나타난다. 재미난 볼거리가 가득 찬 영상세계의 문을 열어주는 리모컨의 유혹은 항상 즐겁다. 요즘처럼 재밌고 다양한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케이블TV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단점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거다. '30분만, 딱 한 편만 보고'라고 했다가 어느새 리모컨의 메뉴 단추를 눌러 미처 보지 못한 전편이나 다른 프로그램(대부분 유료임에도)을 찾아내 밤늦도록 누워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리모컨에 곁눈질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한 날도 어김없이 손에는 리모컨이 쥐어져 있다.

학자들은 인간의 한쪽에서는 계획을 세우도록 명령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을 방해하도록 하는 두 개의 뇌가 있는데 이를 두고 서로 다른 자아(自我)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운동이나 독서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자아보다 소파에 누워 재밌는 드라마를 보자고 하는 또 다른 자아의 힘이 더 강력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저서(호모데우스)에서 전자를 '이야기하는 자아', 후자를 '경험하는 자아'라고 설명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매일 운동하기로 하고 막상 운동할 시간이 되면 운동하러 가고 싶지 않아 피자를 주문한 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는 것은 '경험하는 자아'가 '이야기하는 자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름휴가에 맞춰 식스팩 복근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거나,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거닐겠다고 마음을 다진 청춘남녀들이 닭가슴살과 식욕을 억제하는 건강식품으로 식단을 조절하고 하루 2~3시간씩 열심히 운동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TV를 켜면 유독 '먹방' 프로그램만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눈앞에서 음식이 아른거리고 뱃속에서는 먹을 것을 넣어 달라고 야단이다. 결국 '맛있는 녀석들' 프로그램을 보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항복선언'을 하고 피자를 주문한다. 당장 건강을 해치거나 신앙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둥, 내일부터 하면 된다는 누구나 다 생각하는 '꼼수'를 신의 한 수인양 찾아내 스스로 위안한다.

예전에 다녔던 인천 중구 중앙동의 한 피트니스센터 사장이 고깃집 때문에 황당한 일을 겪었던 얘기다. 시설도 깔끔한 피트니스센터는 2층에 있었는데 어느 날 아래층에 고깃집이 들어섰다.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창문을 연 뒤로 회원들이 줄기 시작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으면 창문을 통해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고, 운동 중에 배고픔을 참지 못한 회원들이 다른 곳으로 옮겼던 것이다. 피트니스 사장은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막고 환기시설과 냉방시설을 추가로 설치했다. 운동 중에 맡는 고기 굽는 냄새는 정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때 알았다. 고깃집 위층에 피트니스센터를 열면 폭삭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나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인생의 진정한 실패자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희망을 포기한 사람이라고 한다. 단맛은 먼저 다가와 짧게 머무르겠지만, 쓴맛은 나중에 찾아와 길게 남게 된다.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쉽고 편한 것에 만족하다 보면 나아지는 삶이 아니라 정체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 자신을 위한다면 '이야기하는 자아'의 말에도 귀 기울여 보자. 눈과 입에 즐거운 것만 찾다 보면 몸과 생각의 근육은 둔해지게 마련이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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