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백범의 키

정진오

발행일 2019-07-22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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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들 '백범일지' 읽었다는 사실에 대견
시시콜콜한 궁금증 못 풀어줘 자괴감 마저
그동안 가장 기본적인 정보 빼놓고 있었다
70주기에 학생들 질문이 정신 바짝 들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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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백범 김구 선생의 키가 얼마였느냐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인천에서 기자생활을 25년 가까이하면서 그래도 백범과 인천의 관련성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는 파고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백범은 인천에서 감옥살이를 두 번이나 했다. 그와 어머님의 동상이 인천대공원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동안 '백범일지'에 나오는 인천 대목을 살피기가 여러 번이다. 그런데 그의 키가 몇이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질문은 며칠 전 2학년 여중생들과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인천 중구에 있는 그 학교에서는 국어시간에 '백범일지'를 읽었다고 했다.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고, 백범 서거 70주기가 되는 올해 백범이 옥살이한 그 현장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백범이 누구인지 좀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써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잘 알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최대 문학적 성과라 할 '백범일지'를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러웠다.

백범을 향한 그 학생들의 사소하고도 세부적인 시선이 그동안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학생들에게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그런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백범의 키가 컸는지 작았는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안경을 썼는데 눈은 언제부터 나빠진 것인지, 여자친구는 얼마나 되었고, 자식들은 얼마나 되었는지 등 그야말로 신상과 관련한 시시콜콜한 것들을 알고 싶어 했다. 학생들의 그런 궁금증은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왜 우리는 백범을 공부하면서 그의 키가 얼마인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자괴감마저 들었다.

학생들에게 인천대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동상과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동상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곽낙원 여사 동상 발밑 받침부에 적힌 '1949년 8월'이라는 제작 연월과 '朴'이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그려 넣은 제작자 표시를 크게 확대해 보여주었다. 이 부분은 기단부의 높이가 높기 때문에 사다리를 타고 오르지 않는 이상 쉽게 볼 수가 없다.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사거한 지 불과 2개월 뒤에 완성된 어머니 동상은 경기여중 미술교사 출신 박승구(朴勝龜, 1919~1995)의 작품이다. 박승구는 백범으로부터 어머니의 모습을 철저한 고증을 받아 조각했다. 조각가 박승구는 어머니 동상을 마무리하면서 해방된 조국에서 통일을 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간 비운의 백범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는가. 그렇게 백범을 보내서일까. 박승구는 이듬해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했으며 북쪽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학생들은 '해방이 되었는데 안두희는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을 왜 죽였는가'라고 했다.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한 사람을 알리는 여러 정보 중에서 키와 몸무게, 시력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백범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키와 몸무게, 시력은 빼놓고 있었다. 사진을 토대로 이승만 대통령보다는 10cm 정도는 더 컸다는 식의 평가만 있었다. 기초적인 신체적 특징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인천대공원의 모자 동상은 그 규모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아들 백범 동상은 대단히 큰데 비해 어머니 동상은 왜소하기 그지없다. 그 동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백범의 실제 키와 몸무게는 빠져있다.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백범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책 같은 게 필요해 보인다. 인천은 백범과 그 어머니 동상을 한 공간에 나란히 세워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할 충분한 동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백범 70주기에 들은 중학교 2학년생의 질문이 정신을 바짝 들게 한 죽비소리가 되었다.

/정진오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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