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117]에스케이-6 SK그룹 완성

복합기업집단 변신… 재계 10위 '껑충'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9-07-23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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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
선경은 지난 1976년 종합무역상사에 지정되는 등 수출 선봉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은 당시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 위해 폴리에스터 원면을 선적하고 있는 모습. /SK 제공

최종현, 증자 재무구조 개선
경산 신생공업사 인수 필두
'쉐라톤 워커힐' 관광업 진출
전자·토건·건설·제조업등
수출유망中企 다각화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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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까지 선경은 섬유 중심의 수직 다각화 위주였을 뿐만 아니라 다각화 속도도 느렸다.

선경이 오늘날과 같은 복합기업집단으로 변신한 것은 1973년 창업주 최종건 사망을 전후한 시기부터였다.

1973년에는 최종건의 사망과 함께 최종현이 선경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최종현은 오일쇼크의 여파로 초래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주력 계열사들에 대한 증자를 단행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또 새로운 캐시카우의 개발 내지는 기업의 위험분산 차원에서 섬유 이외의 다각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1973년에는 선경개발(관광)과 서해개발(조림), 스카이메리트(봉제), 선경유화(DMT공장), 선경석유(정유공장) 등을 설립하고 극동창고를 인수하는 한편 영남방직의 경영에 참여했다.

수출에도 주력해 1976년에는 (주)선경(선경직물의 후신)이 종합무역상사에 지정됐다.

>> 종합무역상사 지정

정부는 ①수출실적 1억달러 이상 ②15개국에 100만달러 이상 수출 ③100만달러 이상 수출품목 15개 이상인 업체에 한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했다.

또한 정부는 종합무역상사를 육성하기 위해 1975년 12월 3일에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을 제정하고 중소기업의 계열화를 적극 지원했다.

선경도 삼성, 현대, LG, 금호그룹처럼 종합상사로 지정받기 위해 수평적 다각화에 주력했다.

1976년 1월 경북 경산에서 볼트, 너트, 톱니 등을 생산하는 자본금 10억원의 신생공업사를 인수한 것을 필두로 6월에는 서울 남대문로 5가 5-3의 동화빌딩(대지 230평, 지하 3층, 지상 9층)을 16억810만원에 구입해 본사사옥으로 전환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자본금 3억원의 선경기계를 선경산업의 자회사로 설립했으며 1973년 3월에는 선경개발이 서울 광진동에 지하 4층, 지상 18층(연건평 1만5천900평)의 특급호텔인 쉐라톤워커힐(540객실)을 개관해서 관광업에도 진출했다.

1961년 사단법인 워커힐이 창립됐고 1962년 국제관광공사에 인수돼 1963년 4월 호텔을 개관했다.

한국에 마땅한 휴양지가 없어 일본으로 휴가를 떠나는 주한미군을 유치하기 위해 세운 호텔로 '워커힐(Walker-hil)'이라는 명칭은 초대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쟁 때 활약한 월턴 H.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을 기리는 의미로 지어졌다. 1968년에는 파라다이스 카지노 워커힐을 개장했다.

국내의 대표적인 특급 관광호텔인 워커힐호텔이 국영기업에서 민영으로 거듭난 것이다.

1976년 11월에는 자본금 1억원의 선경금속과 선경매그네틱을 각각 설립했는데 오디오 테이프 제조업체인 선경매그네틱은 당초 자본금 2억5천만원의 수원전자로 출범했었다.

>> 다양한 기업군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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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같은 달 대구시 북구 노원동에 소재한 자본금 5억6천만원의 신원산업유한회사도 인수했다. 신원산업은 1969년에 설립된 자전거 제조업체였는데 선경이 인수, 1977년 3월에 선경스마트로 상호를 변경했다.

1977년 8월에는 토건업체인 협우산업을 4억6천만원에 인수해 선경종합건설로 재발족하고 그해 12월에는 동일 업종의 삼덕산업까지 인수해서 사세를 확장했다.

달러박스로 회자되던 중동건설특수 및 국내 부동산개발붐에 편승하고자 건설업에 진출한 것이다.

1978년에는 전북 군산에 소재한 경성고무를 인수했다. 1932년에 이만수가 설립한 업체로 1936년에는 종업원 수 100명에 일산 500족 규모로 성장한 군산 유일의 한국인 소유 고무신제조업체였다.

초기에는 검정고무신만 생산했으나 점차 기술 수준을 높여 표백기술을 적용한 흰 고무신뿐만 아니라 흑색 및 백색 운동화 등으로 제품의 다변화를 도모했다.

그 결과 해방 무렵에는 경성고무의 '만월표'가 서울 이남지역에서 최고인기를 누릴 정도로 성장했다. 경성고무는 식민지체제하에서 오로지 한국 민초들의 애호품인 고무신 생산에 주력해 민족자본으로 성장한 드문 케이스였다.

1978년 7월에는 요트생산업체인 선경머린을 자본금 8천만원에 설립했다. 선경은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기 위해 수출 유망 중소기업에 대한 마구잡이식의 수평적 다각화에 박차를 가해서 나머지 복합기업집단으로 변신했다.

그 결과 선경은 현대, 럭키, 삼성, 대우, 효성, 국제, 한진, 쌍용, 한국화약에 이어 재계 10위의 재벌로 급부상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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