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기녀시인 운초(雲楚)의 탑시(塔詩)

김윤배

발행일 2019-08-0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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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재능 탁월한 평안도 성천 기생
유명 시인이자 선비인 김이양 만나
스승·연인관계로 왕성한 창작활동
서울 돌아간 후 소식없자 쓴 시
'부용상사곡' 임향한 마음 구구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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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성천의 기생 운초 김부용은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과 더불어 3대 기녀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의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820년쯤 나서 1869년쯤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기녀시인으로는 드물게 '운초집'이라는 문집이 있고 주옥같은 한시 300여 편을 남겼다. 남긴 시에는 그녀가 평안북도 성천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출신이 비천하지 않았는데 어떤 연유로 기녀가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와 천부적인 재능으로 열여섯 살에 가무는 물론 시문에까지 능한 성천의 명기가 되어 있었다.

성천부사 환영연회에 불려나간 운초는 부사가 보여주는, 평양감사로 와있던 연천 김이양의 서신 속에 자신이 지었던 시편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 서신을 계기로 그녀는 평양으로 연천을 만나러 가게 된다. 성천부사가 평양감사에게 인사를 가는데 동행하자는 것이었다. 어려서 지은 자신의 시를 적어보낸,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며 지체 높은 대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연천 김이양(1755~1845)은 77세로 홍안백발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고고한 선비이자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연천은 운초를 기생으로 대하지 않고 시인으로 맞았다. 그녀는 연천과 능라도며 부벽루며 모란봉이며 을밀대를 두루 돌면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꿈같은 며칠을 보냈다. 성천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초는 자진해서 연천을 모시고 살고 싶다고 진언했다. 연천은 이미 상처한 지 3년이나 지난 때여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운초에게 연천은 시를 논하는 문우이며 시를 깨우치는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다. 연천으로 하여 기적에서 빠진 운초는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한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후 연천은 호조판서가 되어 서울로 돌아갔다. 석 달이 지나도록 연천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운초는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그때 쓴 시가 '부용상사곡'이라는 탑시다. 글자의 배열을 탑처럼 쌓는 것이어서 시에 문리가 튼 시인만이 쓸 수 있는 형식이었다. '이별하니/그립습니다/길은 멀고 편지는 더딥니다/생각은 거기 있고 몸은 여기 있습니다/비단수건은 눈물에 젖었건만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이 아득합니다//……//은장도 들어 약한 창자 끊어버리기는 어려운 일 아니오나 비단신 끌며 먼 하늘 바라보니 마음에는 의심도 많이 떠오릅니다//……//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고 황천객이 되어 외로운 혼이 달 아래서 길이 울며 따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로 끝맺는 탑시는 구구절절이 그리움의 노래다. 헤어져 있는 동안에 미친 듯 쓴 오언절구가 많다. '봄바람은 화창하게 불어오는데/서산에는 또 하루해가 저무는구나/오늘도 임 소식은 끝내 없건만/그래도 아쉬워 문을 닫지 못하네'에는 임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연천은 운초의 마음을 헤아려 '운초에게 주다'라는 시를 쓴다. '왕년에 오강 땅에서 인연 맺었고/금년에 또 해서 물가에 함께 있노라/나와의 만남 늦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니/번소도 끝끝내 백낙천을 못 떠났소/술 따르는 얌전함이 세속 상대보다 어질고/시에 대한 소견은 당나라 때 못지 않네/고요한 밤 책상에 기대 읊는 소리 맑고 밝아/시경 빈풍 칠월편을 낭랑히 외고 있네'는 아마도 평양감사 시절에 운초와 함께 했던 기억을 상기시키려 했던 작품으로 읽힌다.

운초와 연천이 남산 기슭의 녹천장에서 함께 한 15년은 두 사람에게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게 해준 찬란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연천이 감기를 앓다 세상을 떠난 것이 그의 나이 91세였다. 운초는 '연천의 죽음을 곡하며'라는 조시로 영혼을 위로한다. '풍류와 기개는 산수의 주인이시고/경술과 문장은 재상이 될 재목이셨지/십오년 살아오다가 오늘 눈물 흘리니/높고 넓은 덕 한 번 끊어지면 누가 다시 이으랴'에는 떠난 시인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사랑이 넘친다. 아름다운 삶이었다.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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