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그들 속의 우리, 우리 속의 그들

日, 식민지배 사과·우경화반대 존재
국내도 아베의 속내 지원자들 있어
이번 사태 한일간 단기적 갈등아닌
역사에 얽힌 오랜 저항의 싸움인 셈
과정 고통스럽지만 지면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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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최근 한일 간의 갈등이 공식적으로 발생하고 번져가면서 둘 사이의 오랜 역사를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는 지적 흐름이 커졌다. 관계 서적도 많이 팔리고 있고,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는 듯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동안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해묵은 역설로 곧잘 그려져왔다. 지리적 인접성과 오랜 교섭 경험에서 발생한 근린성이 가까움이었다면, 둘 사이에 엄존하는 역사적 적대감은 오랫동안 서로를 멀게 했던 정서적 실체였다. 또한 일본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근대의 표본 노릇을 하곤 했다. 우리는 일본식 자본주의의 핵심을 간취하고 활용하였고, 일본식 행정 직제나 경제 시스템을 선진적 전범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로 표현되는 침략과 지배와 폭력의 엄연한 역사는 그러한 경험과는 정반대 쪽에서 항일 혹은 극일(克日)의 정신을 요청했던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나의 민족은 그것을 구성하는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여러 조건과 함께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측면이 맞물려 형성된다. 그 점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공유하고 있는 민족 경험에서 일본은 언제나 완강한 적대감 속에 위치해 있었다. 중세기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반일의식은 근대 식민지시대를 경험하면서 한층 더 증폭되었고, 우리에게 일본이란 언제든지 우리를 침탈할 수 있는 폭력의 근원지로 암암리에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한일 간 양가적 교섭 양태는 우리에게 선망과 혐오라는 이중의 정서적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이다.

모든 주체에게는 자신을 개진하기 위해 부단히 마주 보면서 검색 및 수정을 할 수 있는 타자가 필수적이다. 타자는 본래 자신의 반성적 거울이자 자신 안으로 들어온 능동적 의식의 촉발자인데, 우리로서는 일본을 그 자리에 놓을 때 역사적 적실성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해석의 주체가 비록 우리 자신이지만, 일본을 통해 우리 스스로 해석의 대상이 되는 역설적 전환을 그동안 경험해온 것이다. 투항주의적 동일화 욕망에 의한 친일 성향과 피해 경험을 넘어 정당한 자기 복원을 목표로 했던 저항 성향이 그 맥락으로 나타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저항'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유형, 무형의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존재값을 주장하는 일련의 사유와 행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하나의 힘에 대한 반작용과 역동성(逆動性)을 그 핵심 속성으로 삼는다. 일본이라는 타자를 통해 우리를 세워왔던 엄혹한 역사의 흐름이 그 안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한일 간에 드러난 이번 갈등은 그것이 역사 해석 차원이든 경제 차원이든 단기적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관점을 견지해야 할까? 확연하게 드러난 현상은 일본의 아베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준 절묘한 정치적 화음(和音)이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정부가 과거 일에 빠져 한일 관계를 그르친 것으로 규정하였다. 양국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들의 역사 감각이 오랜 민족 경험을 뛰어넘어 놀랍게 일원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문제의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으며 제대로 된 역사 해석과 입장 천명을 통해 일본이 새로운 길에 들어서야 함을 역설하는 이들도 일본과 우리 쪽에서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니 이번 사태는 '우리-그들'의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그들 속의 우리'도 '우리 속의 그들'도 있는 복잡한 형식을 띠고 있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김응교 교수는 "일본의 민주시민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들과 더 자주 대화해야 한다. 일본인들과 대화를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고 그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 바 있다. 일본에도 식민지배의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한국에도 아베의 속내를 지원하면서 민족 경험을 훼손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한일 간 단기적 갈등이 아니라, 양국 역사에 얽힌 오래고도 선명한 존재론적 저항의 싸움인 셈이다.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지면 안 되는 까닭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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