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길 바닥 똥

이진호

발행일 2019-08-12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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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교재 활용' 문해력 높이는 효과 커
다양한 주제·지역소식 '살아있는 교과서'
모바일·인터넷 '짧은 글' 의사소통 한계
실질문맹 벗어나려면 시간·비용 들여야

이진호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홍길동의 길동이 '길똥'으로 발음된다고 해서 '길바닥 똥'이란 뜻이 아니다." 언론계 대선배가 오래전 한 칼럼에서 쓰신 표현이다. 글(한자 포함)을 제대로 이해 못 하면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얘기다.

'인문학 이야기', '공부 기술' 저자인 조승연 작가는 한 강연에서 "인터넷에서 정보나 자료를 검색하고 분석·종합하는 실력을 높이려면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부터 길러야 한다"고 했다. 검색창에 첫 문장만 보여주는 수십 개, 수백 개의 자료에서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선택할 수 있어야 '검색의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승연 작가는 "인터넷상의 정보가 발달할수록 독서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지적 빈부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고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 노동 인력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 1994년부터 1998년까지 22개 국가를 대상으로 국제성인문해조사(IALS : International Adult Literacy Surveys)를 실시한 적이 있다. 문해(文解)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새로운 직무 지식을 익히거나 재취업하기도 어렵다.

조사 결과 문해력이 가장 낮은 나라는 대한민국으로 나타났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을 학계에선 '실질 문맹'이라고 한다. 모르는 단어는 없지만, 읽고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몇 년 전 국내 한 여론조사 기관이 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실질 문맹률은 7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낫 놓고 기역 자는 알아도 낫의 설명서를 주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10명 중 7.5명에 이른다는 얘기다.

실질 문맹의 대표적 실험이 의약품 설명서를 보여주고 투약해야 하는 약의 양이나 최대 복용 기간이 얼마인지 등을 물어보는 것이다. 의약품 설명서는 전문적이지도 않고, 비유나 상징이 들어있지도 않다. 보험 약관, 각종 회원 가입신청서, 정부문서, 세무 문서처럼 문장이 길어지고 수치, 전문용어 등이 나오면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실질 문맹에 해당한다.

글을 읽지 않을수록 문해력은 떨어진다. 학자들은 규칙적이고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는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문은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문해력을 높이는 효과가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부터 NIE(Newspaper In Education)를 운영하고 있다. 신문을 교재로 활용해 지적 성장과 학습효과를 높이는 학습방법이다. NIE는 1930년대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이후 전 세계 50여 개가 넘는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신문은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 등 다양한 주제와 지역 소식까지 담고 있어 특정 분야의 책만 보는 '편식'을 피할 수도 있다. 신문이 '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는 이유다. NIE 교육을 통해 종합적인 사고 및 학습능력, 독해 및 쓰기 능력, 논리성과 비판력 증진, 문제 해결 및 의사결정 능력이 향상됐음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책이나 신문 읽기를 가볍게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문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다. SNS에서 의사소통은 대부분 짧은 글로 이뤄진다. 짧고 함축된 글이라도 문해력이 떨어지면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짧은 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일부분만 문제 삼거나 전혀 다른 엉뚱한 댓글을 달다 망신을 당하는 이유는 문해력이 낮아서다. 실질 문맹에서 벗어나려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노력해야 한다. 홍길동의 길동을 길바닥 똥으로 이해하는 일이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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