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연꽃 밭에서

권성훈

발행일 2019-08-1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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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밭에 빠진 날, 힘들고 지친 날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날

연꽃 보러 가자, 연꽃 밭의 연꽃들이

진흙 속에서 밀어 올린 꽃 보러 가자,

흐린 세상에 퍼지는 연꽃 향기 만나러 가자,

연꽃 밭으로 가자, 연꽃 보러 가자

어두운 세상 밝혀 올리는 연꽃 되러 가자.

연 잎 위를 구르는 이슬 만나러 가자,

세상 진심만 쌓고 쌓아 이슬 되러 가자,

이슬 되러 가자,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자리에 눕고만 싶은 날

이건청(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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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한편의 시가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감각과 지각의 차원을 넘어 행동하는데 있다.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감정, 의지와 같이 느끼고 자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행위를 보였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우리의 감정을 쉽게 자극하는 시일수록 정서에 와 닿는 속도가 빠르게 작동하는데, 오래 남고 많이 회자되는 시들의 공통점도 이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다. 일생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진흙 밭에 빠진 날, 힘들고 지친 날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날'은 감각으로 이루어지며, '연꽃 보러 가자, 연꽃 밭의 연꽃들이 진흙 속에서 밀어 올린 꽃 보러 가자, 흐린 세상에 퍼지는 연꽃 향기 만나러 가자, 연꽃 밭으로 가자, 연꽃 보러 가자'는 지각으로 생겨나는 것. 이와 다르게 '어두운 세상 밝혀 올리는 연꽃 되러 가자. 세상 진심만 쌓고 쌓아 이슬 되러 가자, 이슬 되러 가자'는 목적을 향한 실천적인 것이 되는 것으로써 그러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자리에 눕고만 싶은 날'을 살고 있는 당신도 한편의 시를 통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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