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광복 떨쳐 일어선 '34인의 나이팅게일'

대한간호협회, 독립운동 투신한 간호사들 발굴·재조명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9-08-15 제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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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女지식인 사회지도자 역할
단재 신채호선생 부인 박자혜씨
동료와 '간우회' 조직 태업 주도
임정지원 '애국부인회' 대거참여
만세운동때 부상자들 치료 간호


일제강점기 때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간호사였다. 이들은 앞서서 근대교육을 받은 당대 지식인이자 여성계를 이끈 사회지도자 역할을 했다.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간호사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14일 대한간호협회 인천시간호사회에 따르면, 최근 간호협회 중앙회 차원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간호사 34명을 발굴하고, 그 행적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일제강점기 간호사들의 독립운동 가운데는 인천과도 연관을 지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대표적인 간호사 출신 독립운동가는 박자혜(1895~1943)다. 그는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1880~1936)의 부인이기도 했다.

조선총독부 부속병원 간호사였던 박자혜는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동료 간호사들을 규합해 '간우회'를 조직했다.

서울지역 병원 간호사들에게 태업을 주도하고, 후속 만세운동을 계획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해 병원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망명해 신채호를 만나 결혼했고, 남편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박자혜는 1990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3·1운동 직후 임시정부를 후원하기 위해 국내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여성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도 간호사들이 활동을 주도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3·1운동으로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와 가족 구호를 위한 모금활동을 전개했는데,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전국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의 조직이 중심이 됐다.

1919년 11월 이들의 활동이 일제에 발각돼 부인회 결사대장 이성완(1900~1996), 적십자부장 이정숙(1896~1950), 김태복(?~1933) 등 간호사들이 대거 체포됐다.

당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은 교육자인 김마리아(1892~1944)였다.

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체포됐다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병보석으로 잠시 풀려난 김마리아를 중국으로 망명시킨 주역은 인천의 독립운동가 윤응념(1896~?)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사건인 이른바 '인천사건'의 총책임자 윤응념은 1921년 6월 서울에 있는 김마리아를 인천으로 몰래 데려와 인천과 황해도 사이의 한 섬에서 중국 웨이하이로 탈출시켰다.

3·1운동 이후에는 만주지역과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때 간호사들이 활약했다. 만세운동으로 속출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간호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내무부총장 안창호(1878~1938)의 명의로 1919년 8월 대한적십자회를 설립했다.

이어 1920년 1월 상하이 프랑스조계 내 대한적십자회 총사무소에 '적십자간호원양성소'를 설치했다. 상하이 적십자간호원양성소가 배출한 간호사들은 독립군 부상자를 돌보며 항일투쟁의 한 축을 맡았다.

장성숙 인천시간호사회 회장은 "이번에 발굴한 간호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인천지역 간호사들에게 널리 알려 자긍심을 높일 것"이라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간호사들의 정신을 잇기 위한 활동도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후속 연구를 통해 간호사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추가로 발굴하겠다"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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