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사람의 통성으로 역사를 생각할 때

방민호

발행일 2019-08-2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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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부 대지진·후쿠시마 원전 참상
日 국민 마음에 큰 구멍 뚫렸을 것
'제국'의 총칼 아래 삼십오년 고통
조국 산야 잃은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베' 같은 이들에게 묻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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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3·11 때가 생각난다. 2011년이었을 것이다. 일본 동북부에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정확히 말하면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동북부를 강타하며 거대한 쓰나미를 몰고 온 것이었다. 그때 한국에서 유튜브가 막 활성화되고 있었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세상에서 나는 한밤 내내 유튜브를 통해서 전달되는 대지진과 쓰나미의 참상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재난은 단지 땅이 흔들리고 바다가 밀려오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미증유의 규모였지만 그렇게 갈라지고 넘어지고 휩쓸려 유명을 달리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아물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연이어 벌어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태는 그날의 일들을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일들로 만들었다. 모두 네 개의 원자로가 있었고 그것들이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작동이 중지되면서 냉각수를 돌리는 기능들이 마비되고 원자로가 달구어지면서 노심이 녹고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원전 사람들이 황급히 대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풍문에 들으면 원래 곡창지대고 과일도 잘 되는 곳이라 했다. 그 좋은 땅들이 그날 이후 사람이 제대로 들어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나는 그날 일본 사람들의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토를 사랑하기는 일본 사람도 한국사람 못지않고 자신들만큼 완전하게 무엇인가를 해내온 사람들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네들이다. 그런 사람들로서 뜻하지 않은 원전 사태로 후쿠시마 주변 반경 몇십 킬로미터까지는 아예 버려진 땅이 되어 버렸을 때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필자가 무슨 특별한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면, 이렇게 남이 아픈 일을 당하면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역시 사람의 보편적인 심성에서 우러나는 감정의 작용이라 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 새끼손톱 밑에 조그만 상처만 나도 아려하고 괴로워하는 짐승이다. 하물며 한 민족이 정들여 사는 땅이, 그것도 '본토' 한복판이 하루아침에 몹쓸 곳이 되었을 때, 그들이 느꼈던 아픔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없지 않다. 도쿄에서 조금 있으면 올림픽이 열리기도 한다는데,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 땅을 가져야 하므로, 나는 일본이 원전 사태의 괴로움에서 하루바삐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른바 '제국'의 총칼 아래 삼십오년을 살아야 했던, 조국의 산야를 잃어버린 백성들은 그 마음이 어떠했을 것인가. 들어줄 리도 없지만 아베 같은 이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최근에 그는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하면서 이른바 '경제 제재'라는 '무기'를 들고 흔들어댔다. 마치 상대방을 후안무치한 사람 대하듯, "약속" 운운하며,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한테는, 그러니까 또 국가한테는 이런 식으로 행동해도 좋다고, 얼굴이 뻘겋게 되도록 언성을 높이는 그는 마치 술이라도 한 잔 걸친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이름도 얄궂은, 고노 다로인지 야로인지 모르는 외상은 예절을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막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주일 대사를 불러 젖혀서는 하는 말도 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그만이었다. 도대체, 징용이니 위안부니 하는 문제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일본 국민들이 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통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은 아니었다. 일 억 일본 국민을 그때 움직이던 도조 히데키니, 고노에 후이마로 같은 지도자들, 버마 방면의 15군을 이끌며 '천황'의 '적자'들을 3만 명씩이나 죽음으로 몰아넣은 무타구치 렌야 같은 지휘관들, 바로 그들이 패전 전의 일본을 움직이며 일본인들과 아시아인들을 죽음과 환란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경제전쟁이라고 하지만 독일에서 일본을 비판하듯이, 이 사태의 본질은 역사인식에 있다. 일본 정부, 특히 아베 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과거에 무슨 일을 벌였는지 잊고 싶어 하거나 알지 못하거나 반성이 필요 없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념 가득한 데마고그들, 정치 선전꾼들이 나라를 전화에 밀어 넣고 이웃나라 사람들을 즐겨 괴롭히고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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