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법비(法匪)의 나라

이충환

발행일 2019-08-28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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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갖고 헌법 파괴한 수구 법비' 기고글
조국 등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발맞춰
한홍구 교수가 당위성 주장하며 쓴 표현
지금은 보수측이 사용 희한한 일 벌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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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요즈음 정쟁의 현장에서, 공론의 장에서,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법비(法匪)'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로 정의한다. 일본어사전에도 같은 단어가 있다. 뉘앙스는 좀 다르다. '법률을 절대시하여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관리나 법률가', '법률을 궤변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멸칭'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런 표현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건 1930년대 일제 치하 만주국에서였다고 한다. 이 흔치 않은 단어를 이 땅에서 대중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는 아마 진보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이지 않을까 싶다. 한 교수는 10년 전인 2009년 2월 한겨레신문의 칼럼에 '법비의 난'이라는 글을 게재한다. 보름 전 발생한 '용산참사'를 다뤘다.

"만주에는 마적, 공비, 병비, 토비, 산림비, 녹비, 정치비 등 온갖 비적떼가 난무했다. 만주국이 건국된 1932년 3월, 한 달 동안 비적들이 철도를 공격한 것만 해도 무려 2천여 회에 달할 정도였다. 제국주의 침략권력은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법치를 내세우며 비적을 소탕했다. 일제는 경찰에게 비적으로 의심되는 자를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등 '법치'를 강화했으며, 이 밖에도 만주 현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온갖 법을 제정하여 만주를 지배했다. 법의 지배는 새로운 비적을 낳았다. 만주의 민중들, 심지어는 일제에 협력하는 만주인들조차도 법만 내세우는 일본 관리들을 법비라고 불렀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법률조문을 내세우고 법률기술을 마치 금고털이 기술처럼 써먹는 자들이 바로 법비이다."

한 교수의 '법비'는 2015년 7월 같은 신문의 특별기고를 통해 다시 등장한다. '법 갖고 헌법 파괴한 그대, 수구 법비라 불러주마' 제목의 글은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김상봉, 김두식, 박노자 등 40∼50대 지식인들이 제안한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의 당위성을 주창했다. "대한민국의 총리 잔혹사는 총리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총리가 된 법비들이 더 문제였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국가를 이끌어 갈 의지도 능력도 없는 수구정권이 공안세력에 의존하게 되면서 한결같이 법을 갖고 장난치는 법비들만 총리가 된 것이다" 정홍원, 이완구, 황교안, 김기춘, 황우여 등 내로라하는 역대 보수세력의 엘리트들을 한 교수는 '반헌법행위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통칭해 '수구 법비'라 했다. 이후 이 단어는 진보세력의 전유물이 됐다.

그런데 진보세력이 살뜰하게 써왔던 이 단어를 근자에 보수세력이 쓰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지난 7월 31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공동으로 친일파 유족들의 상속세 취소소송을 대리한 사건을 언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저서 '운명이다'에서 나는 그 당시 세속적 기준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면서 돈도 꽤 잘 벌었다. 법조계의 나쁜 관행과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다 라고 했습니다. 상속세를 감면받기 위해 유언증서를 유족들이 임의로 작성하고, 위증이 다반사였던 법조계 관행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법비'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단어는 이제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공통어다.

공론의 장에서도 이 단어가 낯설지 않은 건 순전히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국 서울대 교수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우병우 민정수석을 '법꾸라지'라고 조롱했던 민심이 이젠 그를 '법비'라고 손가락질한다. '공정'을 국정의 제1 기치로 내걸었던 현 정권의 최고실세 자녀와 관련한 수혜의혹과 특혜논란에 청년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다. 아버지들은 아들과 딸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주지 못한 자신을 못난 아비라며 자책하고 있다. 이미 장관이 되고 안되고를 넘어섰다. '법비'를 준엄하게 질타했던 글이 한껏 치켜세웠던 응원의 대상이 한순간에 '법비'로 전락해 질타당하는 기막힌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이쯤 되면 가히 '법비의 나라'라 할 만하다.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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