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칼럼]그래서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명호

발행일 2019-09-0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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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권리, 공동체 위해 양보됐지만
지금 그 반대 작용 나타나고 있어
언론의 '무차별 신상털이' 당연시
사회분열 등 고질적인 문제 반복
전문가 집단 부재가 더 큰 '문제'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디자이너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얼마 전 한 정부부처 위원회에서 간담회 자리를 갖자는 연락을 받았다. 사회적 가치와 정부 혁신이라는 주제였다. 언뜻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동안 내가 쓴 글 등을 읽고 초대하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고 하여 수락하였다. 미팅 날짜가 가까워 오면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질문에 직접 답을 하는 것보다는 우회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를 논하는데 기본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를 중심으로 대화 자료를 준비하였다.

사회적 가치의 세부분야를 보면, 인권, 안전, 건강·복지, 노동, 기회제공·사회통합, 상생·협력, 일자리, 지역사회, 지역경제, 기업 CSR, 환경, 참여, 공동체·공공성 등 13 분야에 달한다. 보편적 가치로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시대적 가치로서의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가지 방면의 접근을 해보았다. 인류 보편성이라는 방면과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라는 방면이었다. 보편성이라는 방면에서 사회적 가치는 개인, 공동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라는 3가지 측면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개인의 측면을 보면 크게 자유와 안전, 생존권이라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해 달라는 것으로 시대를 거쳐 진화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민주화 요구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요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의 존중, 즉 자아실현의 공정한 기회와 여건에 대한 요구로 바뀌고 있다.

공동체의 측면에서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에 대한 요구가 중요했다. 산업화는 부(재화)를 만들어 안전과 번영을 달성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희생되었다. 오염, 양극화, 상대적 박탈감, 갈등 등. 앞으로는 공동체 내의 화합과 협력, 생태와 환경을 고려한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서 보면 조화가 중요했다. 개인의 권리는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양보, 희생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 반대 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권리의식은 공동체에 대한 반발로 공공선에 대한 합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신뢰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선의 부족으로 개인 권리의 양보 없는 추구는 만인대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용히 해달라는 것도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화를 내고, '갑질'도 나의 권리이고,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 경험에서 형성된 반일의식을 '반일 종족주의' 라고 주장하는 것도 내 권리가 되었다. 모 장관 후보자의 자녀에 대한 '신상털이'가 언론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어도 '개인의 알 권리와 검증'으로 당연시되고 있다. 개인의 존중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가?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존중되고, 개인이 공동체의 가치와 그 지속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조정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때 '개인과 공동체의 역동성'이 살아난다고 본다. 필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불행한 개인과 사회의 역동성 저하'라고 진단한다. 성장의 침체, 좋은 일자리 감소, 불공정한 관행, 노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사회부담과 세대갈등, 미세먼지 등 환경 위기의 상황에서 정치권은 갈등 조정기능이 마비되고 오히려 증폭시키는 정치 무능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작은 이슈에도 불안감은 분노로 증폭되어 언론의 여론몰이에 대중이 동원되는 '방향을 잃은' 시대가 되었다. 장관 후보자 검증이라는 일년에도 십여 차례 진행되는 이벤트가 한 장관 후보자 검증에서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본의 화이트 국가 제외와 수출 규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중단,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과 기술 패권 경쟁, 북한의 무력시위 등 한반도를 둘러싼 격변의 위기를 가리고 있다.

개인도 없고 공동체도 없는 무능한 정치권과 언론의 국민동원과 사회분열은 유일하게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고질적인 문제가 지속되는 것일까? 필자는 책임과 권한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부재라고 본다. 전문가 집단에서 검증되고 자정돼야 할 것들이 대중의 판단과 심판 대상이 된다. 제도의 문제인지, 그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을 막지 못한 전문가의 문제인지에 대한 검토는 사라지고 전문가가 다뤄야 할 제도와 현실의 모호한 영역에 법이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필자는 이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모 후보자에 대해서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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