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이름 있는 집

김수동

발행일 2019-09-04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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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부흥주택 문패 기억 또렷
전세난민 늘며 도시 익명 공간으로
캐슬·팰리스… 공동주택 이름 난해
욕망대상·상품화로 자의적 조어법
공간 걸맞은 의미부여 '건축의 완성'


수요광장 김수동2
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청량리 부흥주택, 1960년대 초 홍릉 서편에 서울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대한주택영단('LH'의 전신)에서 공급한 2층 연립형 국민주택단지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다. 200호가 넘으니 당시로는 적지 않은 규모의 집들이 골목을 마주하여 어깨를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작은 마당도 있었고, 옆집과는 낮은 울타리로 경계를 삼았지만 늘 열려 있는 문이 있어 자유로이 왕래를 했던 기억이 있다.

부흥주택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그 집과 골목 마당이 작다고 하는 것은 4년 전 우연히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다닥다닥 붙어있는 협소한 집과 골목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당시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러 가지 정보를 유추해보니 바로 그곳이 내가 살던 곳이었다. 어린 시절 그곳은 나에게 절대로 작지 않은 우주와 같은 공간이었다.

이제는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또렷이 남은 기억이 하나 있다. 바로 문패. 아버지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진 직사각형 나무 문패가 대문 기둥에 반듯하니 걸려 있었다. 문패는 그 집을 떠나 이사를 간 수유리 집에도 당당히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집안 경제사정의 악화로 전세난민의 삶이 시작되면서 문패는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다시 빛 볼 날을 기다리며 집 안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러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영영 찾을 수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문패가 필요 없는 익명의 공간들로 도시가 채워진 것이다.

이름 없는 집 또는 무슨 뜻인지 모를 난해한 이름과 숫자로 호명되는 집이 익숙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집에 의미 있는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한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내가 사는 마을의 이름은 '절골마을'이다. 천년고찰을 품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다. 우리 마을은 최근 개발이 허용되면서 20~30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캐슬OOO, OOO몽마르뜨, OOO파크, OOO하우스. 우리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공동주택의 이름들이다. 어쩌다 우리 공동주택의 이름들이 이렇게 국적불명의 언어공해 수준이 되었을까? 그것은 집이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시장에서 쉽게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택공급 사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70년대 10평대 아파트에 '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오늘날 20~30평 내외의 중소형 아파트에 '팰리스', '캐슬', '로얄' 등의 이름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물며 '빌라'는 이제 저층 주거지 다세대주택을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알만한 이름들은 거의 다 사용되었고 기존의 이름들과 차별화를 위한 자의적 조어법이 난무하다 보니 난해한 이름들이 속출하고 있다.

아무튼 주택을 비싸게 팔아야 하는 사업자들의 고민의 결과이고 어쩌면 집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을 팔아야 하는 사업자들이 아니라 그 집에 살고자 하는 주민들이 집 이름을 짓는다면 저런 이름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구름정원사람들, 오시리가름, 하심재, 푸른마을, 가치이은, 꽃보라마을, 눈뫼가름, 소행주, 어쩌다집, 일오집, 오우가… 집이 위치한 지역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의미와 사연이 있는 공동체주택의 이름들이다.

우리 집은 '여백'이다. 집에 대한 덧없는 욕망을 비우고 그 여백을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으로 채워가자는 뜻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우리는 다세대주택 두 개 동을 나란히 지으면서 각 건물에 '파란여백'과 '하얀여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물리적으로 집을 짓는 것만이 건축이 아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집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것으로 건축은 완성된다. 우리도 스스로의 언어로 집 이름을 한번 지어보자. 그곳은 더 이상 그렇고 그런 콘크리트 더미가 아니라 내겐 너무나 특별한 삶의 공간, '이름 있는 집'이 될 것이다.

/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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