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민들레 꽃씨

권성훈

발행일 2019-09-1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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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 닿는 곳 어디든 거기가 너의 주소다

조심 많은 봄이 어머니처럼 빗어준 단발머리를 하고

푸른 강물을 건너는 들판의 막내둥이 꽃이여

너의 생일은 순금의 오전

너의 본적은 햇빛 많은 초록 풀밭이다

달려가도 잡을 수 없던 어린 날의 희망

열다섯 처음 써 본 연서 같은 꽃이여

너의 영혼 앞에서 누가 짐짓 슬픔을 말할 수 있느냐

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을

지향도 목표도 없이 떠나는 너는

보오얀 몸빛, 버선 신은 한국 여인의 모시 적삼 같은 꽃이여

너는 이 지상의 가장 깨끗한 영혼

공중을 날아가도 몸이 음표인

땅 위의 가장 아름다운 소녀들

이기철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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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욕망에도 무게와 부피가 있던가. 채울수록 무거워지고 부피를 더해가는 짐처럼 욕망은 채울수록 들어차면서 늘어난다. 가중되는 무게와 커가는 부피를 통해 욕망은 욕구를 키우면서 자신마저 그 안에 전복시키고 만다. 그러면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부유하는 물질 앞에서 빈번히 무릎을 꿇으며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해 버린다. 반면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게를 가졌다. 채울수록 무거워지는 욕망을 '버림'으로 벼리는 것같이 가벼움은 무거움을 버리고 민들레 꽃씨처럼 날개 없는 날개를 달 수 있다. "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을" 아는 민들레 꽃씨는 '날아가 닿는 곳 어디든 거기가 너의 주소'가 생기는 것처럼. 봄에 개화하여 '몸이 음표인' 꽃씨를 남기는 민들레의 꽃말이 '행복'인 것은, 비로소 '깨끗한 영혼'으로 가벼워져 얻게 된 '비움의 자유'를 이르는 말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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