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송강과 진옥의 화답시

김윤배

발행일 2019-09-20 제18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2019091501000975000048112

광해군 세자책봉 진언 '강계 유배'
깊은 밤 취흥 도도해지자 '즉흥시'
조용히 듣고있던 진옥 수줍게 화답
적소생활 청산 기쁨속 이별의 고통
詩 '송별'로 아픈마음 가슴에 새겨


2019091501000975000048111
김윤배 시인
기녀 진옥은 오로지 송강 생각뿐이었다. 어떤 여흥의 자리에 불려나가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던 것은 송강이 정신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송강의 시문을 거문고에 실어 노래하는 것으로 모련(慕戀)과 그리움을 달래며 10년이었다. 송강이 왕의 진노로 강계에 유배되어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듣고 그를 찾아 나선 것이 달포 전이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평안도 강계까지 삼천리 길을 걸어서 마침내 그의 적소에 이르러 위리안치의 초막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계곡을 찾아가 목욕재계 후, 가지고 온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송강을 위해 술과 안주를 장만하고 거문고를 손에 들고 그의 적소를 찾았다. 밤중에 죄인의 적소를 찾은 그녀를 송강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송강에게 큰절을 올렸다.

송강 정철(1536-1593)은 풍운의 정객으로 정적에게 가혹했던 가사문학의 대가다. 송강의 나이 48세에 전라감사로 남원에 내려갔을 때 자미라는 어린 기생의 머리를 올려준 일이 있었다. 시문에 재능을 보이는 그녀를 가까이 불러 거문고를 뜯게 하거나 자신이 쓴 시를 읊게 했었다. 머리를 올려주었다고는 해도 너무 어린 기생이어서 송강은 그녀를 고이 지켜주었고 그녀는 그런 송강의 인간적인 배려에 감동 받아 평생의 지아비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미라는 기녀의 이름을 강아라고 바꾼 것도 송강의 '강'을 빌어쓰는 것으로 송강의 여자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송강은 일 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양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을 때 '자미화를 읊다'라는 시를 강아에게 준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그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네 모습 사랑하리라'라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남원을 떠났던 것이다. 강아는 그 후 진옥이라는 이름으로 남원 일대에서 춤과 노래와 거문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송강은 56세 때 광해군의 세자책봉을 진언하다 선조의 노여움을 사 강계로 유배를 갔다. 유배를 떠날 때 선조로부터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져 있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노골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던 송강이다. 그의 유배와 낙향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속미인곡 등 불후의 가사문학을 남기게 했다.

유배지의 밤은 깊어가고 취흥 도도해지자 송강은 진옥에게 화답시를 제안한다. 진옥은 말없이 거문고의 현을 고른다. 송강이 먼저 즉흥시를 읊는다. '옥이 옥이라커늘 반옥만 너겼떠니/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 조용히 듣고 있던 진옥이 거문고 낮은 현을 고르더니 수줍게 화답시를 읊는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녀겨떠니/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 지그시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송강이 필경, 와락 진옥을 끌어안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스물대여섯의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 밤이 얼마나 짧았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송강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진옥의 시가 이 화답시다. 그 후 강계의 유배생활은 송강에게 새로운 활력과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강계의 초막에서 송강이 풀려난 것은 임진왜란 때문이다. 선조 25년 5월의 일이었다. 송강이 왕명을 받아 전라와 충청지방의 도체찰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진옥은 매우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두렵고 불안했다. 송강 역시 적소의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 속에서도 진옥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마음 아팠을 것이다.

진옥은 송강을 환송하는 자리에서 그녀의 시라고 알려진 이옥봉의 '송별'을 읊어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새긴다. '오늘 밤도 이별하는 사람 하 많겠지요/슬프다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네/애닯다 이 밤 그대는 어디서 자나/나그네 창가엔 외로운 기러기 울음뿐이네'. 진옥은 그 후 강계를 떠나 여승이 되었다고 전한다.

/김윤배 시인

김윤배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