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미군 위안부·(上)갈길 먼 인식 개선]외화벌이 내몰린 '한국사의 피해자' 15만명… 최소한의 지원 절실

김성주 기자

발행일 2019-09-16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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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속아 어렸을 때부터 미군을 따라 이태원, 송탄, 대구, 평택까지 거처를 옮기며 미군 기지촌 위안부 삶을 살아온 장영미(71) 할머니가 젊은 시절 같이 지내던 미군이 찍어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장 할머니는 "예쁘게 나온 사진은 미군 이놈 저놈이 다 가져가서 남은 사진이 몇 장 없다"면서 "같이 미국 가자는 말에 여권 사진도 찍었지만, 결국 나는 가지 못했다"며 말을 아꼈다. /김금보기자 artoamte@kyeongin.com

1957년 미군부대 중심 형성 기지촌
전쟁후 '경제 살리기' 핵심중 하나

지난해 항소심 정부에 손배 판결
'자발적 성매매 아니냐' 시선 여전

 

 


미군 기지촌은 경제의 도구이자, 안보의 도구였다는 주장이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화 획득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였고,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들을 통해 벌어들이는 달러는 '밑천이 들지 않는 장사'로 이해됐다는 것이다.

1957년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지촌에는 15만명 이상이 미군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에 종사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해 숨어있었던 한국 내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 6월, 미군 위안부 할머니 22명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국가배상소송공동변호인단 등이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면서다.

이미 정부는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했지만, 미군 기지촌은 법이 통하지 않는 '치외법권'으로 만든 것이다.

특정지역을 지정하고 기지촌 정화운동 등 지역사회 환경개선과 성매매 관련자들에 대한 성병검증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를 했던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일부 미군 위안부 여성들은 지역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여러분이 애국자다.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며 추켜세웠던 기억을 꺼내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는 43명에게 각각 300만원씩, 74명에게 각각 7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정부의 각종 공문에서 '외국군 상대 성매매에 있어서의 협조 당부', '주한미군을 고객으로 하는 접객업소의 서비스 개선' 등이 나오는 점, 공무원들이 '다리를 꼬고 무릎을 세워 앉아라' 등 성매매업소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들을 직접 교육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재판부는 정부가 성과 인간적 존엄성을 군사동맹의 공고화 또는 외화 획득의 수단으로 삼은 이상, 정신적 피해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이 한국사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인정되기까지는 갈길이 멀어 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과 미군 기지촌 여성의 상황을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목소리와 '자발적 성매매 아니었냐' 등의 인식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순덕 햇살사회복지회 대표는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아직도 정부의 책임 회피 속에 방치되고 있다"며 "이제라도 최소한의 생활지원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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