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조형물, 식민지 근대화 '미화' 부작용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9-09-17 제1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市, 모노레일 노선 주변 설치 검토
일제가 세운 공장 불구 '최초' 착안
무분별한 콘텐츠화 '우려' 목소리
"개항장 개발도 공공희생 인식해야"


인천시가 '사이다의 본고장'임을 앞세워 추진하고 있는 인천항 사이다 조형물 설치 구상이 자칫 일제 강점기 근대화를 미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에 의해 세워진 사이다 공장이 인천을 상징하는 대표 관광 콘텐츠로 적합하냐는 얘기다.

인천시는 중구 월미도를 한 바퀴 도는 모노레일(월미바다열차) 개통을 앞두고 노선 주변에 '사이다 조형물'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애초에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 없이는 못마십니다'라는 코미디언의 유행어처럼 실제 인천 앞바다에 조형물을 띄우기로 했으나 항로 안전 문제로 내륙에 설치하는 방안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이다의 역사는 1905년 2월 일본인 히리야마 마츠타로가 인천 신흥동에 세운 '인천탄산수제조소'를 시작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별표사이다'가 최초의 사이다였고, 1910년 5월에는 경쟁사 '마라무네제조사'가 인천에 문을 열어 '라이온 헬스표 사이다'를 출시하기도 했다. 인천 사이다가 최초라는 점에 착안해 관광 상품화하겠다는 게 인천시의 의도다.

인천은 개항과 함께 근대 문물의 유입이 가속화해 역동적으로 변화한 도시라 유난히 '국내 최초'가 많다. 반대로 이런 최초의 수식어 뒤에는 일본의 식민지 수탈의 아픔이 서려 있기도 하다. 인천의 근대 산업화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시기 역사와 문화콘텐츠 분야 전문가들은 일본이 남긴 개항장 근대 문물에 대한 무분별한 관광 콘텐츠 사업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있었던 일 자체는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을 미화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중구청 앞에 세워진 인력거 조형물도 일제 강점기 노동 착취의 아픔을 고민 없이 관광 상품화했다는 논란이 일어 최근 철거되기도 했다.

인력거는 일본에 의해 도입됐는데 인천은 1895년 국내 최초로 인력거영업규칙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구도심에 '뉴트로(새로움을 뜻하는 New와 복고를 뜻하는 Retro의 합성어)' 감성의 근대 관광지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미화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며 "최초라는 상징성에 기대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일제에 의해 도입된 문물까지 찾아가게 되는 경우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인천 개항장은 일제 침략에 의한 '공공희생의 공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상원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는 "예술성과 역사 의미를 내포한 조형물이 아니라면 관광객이 인천을 다녀가고 나서 식민지 거리를 미화했다는 느낌을 받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김민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