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33년만에 실체 드러낸 '화성 연쇄살인' 사건

경인일보

발행일 2019-09-20 제19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대한민국 범죄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9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용의자 이모씨의 DNA가 10건의 살인사건 중 5, 7, 9차 3건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1차 사건 발생일(추정)인 1986년 9월15일로부터 꼭 33년 만이다. 경찰은 "DNA 일치 결과는 하나의 단서일 뿐"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지만 9차 사건 피해자의 속옷에서 용의자 이씨의 DNA가 발견된 사실을 감안하면, 그를 사실상 범인으로 볼 수 있는 수사 결과라 할 수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차 사건 발생일로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화성시 일대에서 10명의 부녀자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8차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았지만 모방범죄로 밝혀져, 나머지 9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10차 사건을 기준으로 9건의 미제사건 전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2일자로 만료됐다. 그런데 최소한 3건의 살인사건과 관련된 유력한 용의자는 1994년 처제 강간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유력한 용의자가 이미 무기수로 잡혀있었다니, 유족들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원통한 일도 없을 것이다.

미제로 남은 연쇄살인 사건의 발생일은 모두 추정일이다. 유족들은 제삿날도 특정하지 못한 채 희생자들의 원혼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임에도 보관 중이던 증거품들을 국과수에 보내 재분석을 의뢰한 끝에 용의자 이씨를 찾아낸 경찰의 집념과 과학수사의 결실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이씨가 검거됐을 때 연쇄살인 사건과의 관련성을 집중 수사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씨는 경찰이 확보한 결정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지 않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탓이다. 2015년 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적용 기한 훨씬 전에 공소시효가 완료된 탓이다. 기소돼 재판을 받지 않으니 죄인으로 확정할 수도 없다. 그렇더라도 경찰은 이씨와 나머지 사건과의 관련성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공소 여부를 떠나 국민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던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미제 강력사건들이 장래에 규명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을 감안해 공소시효의 효력을 재고할 때가 됐다.

경인일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