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본을 넘어서는 길

추연옥

발행일 2019-10-0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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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대기업 선호' 사회 분위기
신기술 개발불구 '공개입찰' 높은벽
시장진입 곧 단가인하 압력 이어져
'수십년 반복' 中企 성장 막기 일쑤
건강 생태계위해선 후방산업 육성뿐


추연옥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중소기업회장
추연옥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중소기업회장
일본에 대한 전 국민적인 분노가 매섭다. 여행을 가지 않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나서며 나이 어린 학생들까지 국산 필기구를 사용하자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등 국민 각자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 결과 'NO 재팬'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을 우습게 여긴 유니클로를 비롯해 다양한 일본 기업이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 민족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DNA를 타고 난 것 같다.

이번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지정제외 사태가 우리에게는 또 다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점쳐 보며 모처럼 조성된 관련 산업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독일, 일본 등 글로벌 부품 소재강국은 대부분의 제품 생산을 중소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 작지만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탁월한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다는 뜻이다. 대(代)를 이어서 가업을 승계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며 나고 자란 고향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하는 일에도 만족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중소기업 생산 현장에는 일손이 모자라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구직자 수 또한 만만치 않다. 반면 대기업에 입사하려는 취업준비생은 해마다 늘고 있고, 이들은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젊음을 바쳐 일명 '스펙'을 쌓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구직자의 눈높이도 구인기업의 근로환경 문제도 아니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공무원이 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축하받는 사회적 분위기, 나도 모르게 미디어에 노출된 대기업에 대한 막연하고 우호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중소기업으로 향하는 구직자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힘들게 대학을 나온 뒤 스펙을 쌓았지만,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이 되지 못해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죄인이라도 된 듯 움츠러들기 일쑤다.

이 밖에도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의욕을 꺾어버리는 사례도 만만치 않다. 신기술을 개발하고 또 그런 제품을 우선 구매하라는 정부 제도 또한 있지만, 일선 공공기관 구매 담당자들은 여전히 공개입찰을 선호하고 있다. 우선 구매에 따른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고 혹시나 감사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 원인이다.

민간 부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기업에서 원하는 스펙의 제품을 개발해도 실제 구매로 연결되기 어렵다. 국산품 대체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와 수입품을 사용했을 때의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대체과정에 의혹이 없는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만, 나머지는 '독일, 일본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분위기라는 게 중소기업 대표들의 푸념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어렵게 거래가 성사돼 현실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갖춘 중소기업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시장개척과 진입은 곧 단가인하 압력과 성장둔화로 이어진다.

더욱이 화학물질 등록, 평가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중소기업의 경영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도 국산화의 의지를 꺾어 놓기 일쑤다. 이러한 시장 상황이 수십 년간 반복되면서 원천기술이 필수적인 부품 소재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한 결과가 최근의 상황인 셈이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이 있다. 중소기업인들의 도전과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 효과를 거두려면 역시 건강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후방산업 육성이라는 이미 알려진 다소 상투적 해법 외에는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최근 형성된 국민들의 응집력이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넘어 전 분야에서 국가경쟁력 강화의 불길로 타오르길 기대한다.

/추연옥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중소기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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