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쇼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영재

발행일 2019-09-24 제2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화성 연쇄 살인사건 용의자등 초특급 뉴스
각종 의혹 터져나오는 조국사태에 맥 못 춰
2007년 '변양균·신정아 스캔들'과 데자뷰
국론 갈리고 정치 천박한 민낯… 결말 뻔해

2019092301001582300077821
이영재 논설실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을 때만 해도 놀랍지도 않았다. 예견됐기 때문이다. 그 후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아열대 저기압이 시간이 흐를수록 초속 50m의 초강력 태풍으로 변해 그 기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LG 디스플레이가 5년 이상 기능직의 희망퇴직을 한다는 뉴스도, 공적자금 8천억 원이 투입된 한국GM이 파업을 결의했다는 뉴스도 조국 뉴스를 이기지 못한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 신원이 밝혀졌다는 초특급 뉴스가 터졌지만, 이 역시 조국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있다. 조국이 모든 뉴스를 먹어 치워서다.

기시감이란 게 있다. 데자뷰. 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뜻으로 처음 당하는 사건인데 언젠가 한 번 경험한 느낌이 드는 것을 말한다. 이번 조국 사태가 그렇다. 우리의 기억을 2007년 9월로 되돌려 보자. 당시 우리 사회는 변양균과 신정아 스캔들로 온통 벌집 쑤셔 놓은 듯 어수선했다. 청와대 권력 3위 변양균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미모의 큐레이터와의 스캔들. 검찰 수사 결과 변 실장은 신 씨와 '예일대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을 계기로 수년 전부터 잘 아는 사이로, 사적인 편지를 주고받는 '보통 이상의 사이'로 드러났다. 권력의 힘이 작용해 학위 증명서 등 필수 서류조차 없이 동국대 교수에 임용되고 광주 비엔날레 감독에 선임됐다. 동국대에 대한 예산 특혜지원 의혹, 정부 부처의 미술품 적극 구매 배경 등 각종 비호 의혹도 쏟아졌다. 여기에 관음증을 자극하는 낯뜨거운 기사 폭주로 국민은 넋을 잃었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 데 있었다. "깜도 안 되는 의혹이 춤추고 있다"며 언론 보도를 비난했다. 시중에선 3명만 모이면 "대통령이 뭔가 단단히 씌웠다"며 수군거렸다. 그러던 9월 11일. 노 대통령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대통령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전날 사표를 수리한 변양균의 얘기가 나오자 한숨까지 내쉬었다. 노 대통령은 "제가 참 난감하게 되었다. 제 입장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참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렇게 말씀드려야겠다"며 입을 열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는 여러분들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마디로 "나도 속았다"였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측근을 잘못 관리한 책임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는 게 도리지만, 이날 노 대통령은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참담한 모습을 당시 비서실장이던 문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는 것이다.

지난 9일 문 대통령은 자녀 입시 관련, 웅동학원, 가족 사모펀드 등 쏟아지는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 자리에서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된다"고도 말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 지난 18일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과 만나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의 증오와 혐오, 빠르게 확산하는 가짜뉴스나 허위정보들이 공정한 언론을 해치고 있다"며 언론에 유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이 끝까지 변양균 실장을 믿었듯, 문 대통령 역시 조국 장관을 끝까지 믿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우리는 매일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다. 어제는 현역 법무부 장관 자택을 검찰이 압수 수색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그런데도 조국 장관은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태도다. 지난주에는 젊은 검사와의 대화도 가졌다. 조국 장관의 멘틀에 놀랄 지경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국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국론은 갈라졌고, 우리 정치의 천박한 수준과 민낯도 그대로 드러났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여기에 "한번은 비극으로 그 다음번은 희극으로"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이번 조국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는 너무도 뻔하다. 그러기 전에 이런 무의미한 쇼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이제 문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

/이영재 논설실장

이영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