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일잘러'와 '일못러' 사이

정지은

발행일 2019-09-27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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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예능 '맛남의 광장' 보니…
백종원 누구보다 많이 주문량 소화
자신만만하던 양세형은 '우왕좌왕'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 믿음 취해
덜 중요한 일에 정성 쏟는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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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추석 연휴, '맛남의 광장'이라는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백종원이 지역 특산품을 이용한 신메뉴를 개발해 휴게소에서 장사하는 내용이었다. 메뉴는 충북 영동의 특산물을 이용한 영표(영동표고)국밥과 덮밥, 촉촉한 복숭아 파이, 튀긴 마약옥수수였다. 모두 매력적인 메뉴들이었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출연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4명의 출연자 중 으뜸은 역시 백종원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주문량을 거뜬히 소화해냈고, 일을 많이 해 본 사람 특유의 여유롭지만 꼼꼼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손님들에게 영동 특산물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의 미션을 잊지 않고 다른 출연자들의 일까지 살피면서 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일처리 방식은 신뢰감을 더했다. 의외였던 출연자는 양세형이었다. 백종원의 수제자를 자처하며 누구보다 자신만만하던 양세형은 쉴 새 없이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당장의 주문 처리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도 잘못된 확신으로 일을 처리해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다. 주문이 밀리자 선호출 후 국밥을 담아주는 센스를 발휘해 여유롭게 상황을 돌파한 백종원과 달리 양세형의 주문은 밀리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호출 기계가 고장난 돌발상황까지 겹쳤는데도 양세형은 밥을 퍼서 밥공기에 담고 덮밥 그릇에 옮기면서 '밥 푸는' 과정에 시간을 과도하게 쓰는 것도 모자라, 고명으로 올라가는 계란을 정확히 반 토막 내는 등 중요하지 않은 과정에 집중하면서 정성을 들인다. 양세형이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란 신념으로 엉뚱한 데에 공을 들이는 사이 주문은 밀리고, 늦게 나오는 덮밥에 사람들의 불만도 쌓여간다.

처음에 백종원이 알려준 방법 그대로, 너무 정석대로 한 것이 양세형의 실수였는데 사실 이 정도 실수는 초보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수저와 젓가락을 챙겨주고, 밥 양을 밥공기에 맞춰 계량해주고, 달걀을 반으로 정확히 갈라 올려주다니 나는 아주 잘 하고 있어"란 생각과 태도가 문제였다. 전형적인 '일못러(일을 못하는 사람)'의 착각이라 할 수 있겠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손님에게는 수저를 누가 챙기느냐보다 음식이 빨리 나오는 게 훨씬 중요한데, 양세형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뿐더러 자신의 선한 의도에 스스로 취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실제 일하다 보면 양세형처럼 어떤 상황에서 '선함' 혹은 '옮음'을 선택해 문제가 있는데도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못러'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들의 문제는 그 '선함'의 기준이 보편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일못러'들은 '선하게,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나 자신'에 도취해, 자신의 일과 일처리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리더의 잘못이거나 전체 구조의 문제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상황이 어려워도 열심히 일하는 나'는 힘들다고 푸념하며, 자신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결국 개선은커녕 상황이 더 나빠지는 '착각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데, 이미 주변 사람들조차 떠나버린 후다.

'사람이 힘들지 일이 힘든 것이 아니다'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을 힘들게 만드는 것 역시 사람이다. '맛남의 광장' 방송 속에서는 백종원이라는 시대의 '일잘러'가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의 문제로 일이 커지지 않게 수습해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됐지만 현실에서는 일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일 그 자체인지, 본인 자신인지, 타인인지, 어떤 상황 때문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동안 나는 백종원과 양세형 중 누구처럼 일해 왔을까? '일잘러(일을 잘 하는 사람)'라는 확신으로 일해 왔는데 요즘 들어 부쩍 내가 '일못러'는 아닌지 혼란스럽다.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는 없는 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요즘,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다'는 나만의 믿음에 취해 버스를 놓칠까 속 타는 손님은 안중에도 없이 계란을 예쁘게 자르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온 정성을 쏟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따름이다.

/정지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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