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창간특집

[창간 74주년 기획-공정한사회]분노하는 20대, 박탈감의 정체는

출입문 없는 스카이캐슬… 노력의 배신에 놀아난 청춘

실제로 드러난 영화·드라마속 권력층의 뒷모습들
사회생활 시작하기 전부터 좌절 맛본 청년들 한탄
정치·진영논리 해석보다 심각성 제대로 마주해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법일까. 촛불을 들어 정권 탄생에 기여한 20대 청년들이 조국 장관의 자녀 논란을 계기로 다시 촛불을 켜고 현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정권 뿐 아니라 현 정부 들어서도 대통령과 여권의 20대 지지율은 꾸준히 하락추세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국 사건을 두고 여권 인사들이 20대에게 쏟아낸 말들은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다.



'야당의 정치공세'나 '가짜 뉴스' 등으로 20대의 분노를 조소하며 진영 논리로만 대응하고 있고, 야당 역시 잘못된 구조를 개혁할 대안이나 의지도 없이 죽어라 대통령과 여당만 공격하는 모양새다.

정말 그들의 해석대로 '철 모르는 20대'들이 어른들의 정치 싸움에 놀아나는 걸까. 이른바 한국사회에서 성공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서울 명문대학의 학생들이 일제히 촛불을 든 것이 비단 정치 혹은 진영의 논리로 해석될 수 있을까.

창간을 맞아 20대 독자들의 분노를 공감해보기로 했다.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수도권에 거주하는, 평범한 20대 독자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20대 청년들의 삶을 종합해 가상의 인물 A씨를 만들고, 논란이 된 유력인사의 자녀들의 삶을 종합한 가상의 B씨를 탄생해 그들이 걸어 온 삶을 비교했다. 또 20대 청년들이 바라는 '공정'과 '희망'을 담았다. → 편집자 주

"영화 기생충에서 숨겨진 실체를 보고 났을 때 느꼈던 비참함을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거지."

올해 나이 서른. 서울 4년제 대학을 나온 취업준비생인 그는 수도권의 평범한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학여행을 외국으로 가지는 못하는 학교', '매년 문·이과에서 서울대학교를 각 1명씩 보내는 학교'쯤 된다.

"맹모삼천지교 알지? 맹자 엄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이사만 3번 했다잖아. 사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조금 더 나은 고등학교를 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집을 옮기셨어. 강남 8학군은 아니더라도, 소위 '꼴통' 학교는 가지 않을 수 있었지. 그 당시 엄마는 '큰 꿈은 못 꾸더라도, 이사를 해서 조금 더 나은 학군으로 가자'고 하셨지."

그는 고등학교 3년 간 전교 10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공부를 곧잘 했지만 수능에서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재수를 결심했다.

"나는 유명하지 않은 재수학원을 다녔는데, 학원을 알아볼 때 엄마가 무척 미안해하던 게 생각나. 그때는 몰랐어. 엄마가 왜 미안해했는지. 지금은 왜 그랬는지 조금 알 것 같아. 아들이 좋은 분위기에서 공부하길 바랐겠지. 없는 자식들은 거기서부터 소외된다고도 생각했을 거야."

그래도 대학에 들어가면 수월할 줄 알았다. 하지만 취업의 벽은 대입보다 더한 철옹성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3년 째 취업을 준비 중인 그는 매일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한다.

"국내 경기 안좋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무서워. 현대, SK 같은 대기업들은 계속 공채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하고, 그러면 경력을 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채용형 인턴은 줄면서 쓰다 버리는 체험형 인턴만 늘더라고. 취업 정보도 격차가 크지. 학교에서 자소서 컨설팅을 받았는데, 이것 저것 쓰지 말라는 이야기만 하는데 도대체 뭘 쓰라는 건지 모르겠어. 별 도움이 안돼."

최근 '조국 사태'를 보며 그는 비참한 감정이 엄습했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기득권들은 그들끼리 정보를 공유하잖아. 조국 장관 가족만의 일은 아니라고 봐. 누구 아들, 누구 딸의 취업, 입시비리 우린 숱하게 봐왔잖아. '그들이 사는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하나의 파편이 드러나니까 자연스럽게 나와 비교도 되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더라고."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저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대입이든, 취업이든 솔직히 노력만 하면 될수 있는 거 아닌가요?"

올해 나이 스물여덟의 B씨는 서울의 유명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 진학했다. 지금은 국내 모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에 재학 중인 B씨가 열심히 공부했던 10대와 20대 시절을 되돌아봤다.

그는 운좋게(?) 교수인 부모를 따라 중학교 2년을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덕에 영어논술과 면접만 거치면 되는 특례입학 제도를 통해 서울의 한 외고에도 수월하게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B씨는 학교와 부모의 추천을 받아 국내 여러 대학 연구소의 인턴십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열심히 연구에 참여했고 능숙한 영어실력을 발휘해 연구논문에도 도움을 줬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소년을 연결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든 바로 그해, 복지부장관상도 받았다. 그건 생활기록부에 적을 수상실적에 도움이 됐다.

미국의 한 과학경시대회에 참여하고자 어머니의 도움으로 국내 유명 대학의 교수에게 실험실을 빌려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노력이다. 더불어 해당 교수의 인턴으로도 일하며 국제학회논문 포스터에 저자로 등재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고교시절 차곡차곡 스펙을 쌓은 B씨는 국내 명문대학교에 어학성적(40%)과 학생생활기록부(60%)의 수시 전형으로 입학했다.

손에 꼽을만큼 몇 명 뽑지 않는 수시전형이라 정보를 알아야만 가능했는데, 그는 일찌감치 선택과 집중을 통해 탄탄히 준비, 가능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그는 쉬지 않고 노력했다. 대입도 그러했듯 취업도 누가 더 좋은 스펙을 쌓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는 운이 좋게 아버지 지인의 친구가 소개한 공공기관 스포츠사업부 계약직 직원으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공기업들이 인턴 개념 대신 계약직으로 대학생 인턴을 선발할 때다. 주변의 친구들이 대학생 계약직이란 개념을 모를 때 였는데 아버지를 통해 얻은 정보로 6개월 공기업 인턴 경력을 쌓은 셈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부모와 함께 열심히 발품 팔아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이야기했다.

/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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