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또 다른 기회

신승환

발행일 2019-10-07 제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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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선 과제 '검찰개혁' 자명한데
왜 그 사실을 두고 대립하는 걸까
숙제 안하고 푸는 방법 싸우는 꼴
정치인이 못하니 또 '촛불든 시민'
이 찬스 놓치면 정치 퇴행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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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검찰개혁에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실질적으로는 법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깝게는 87체제 이후 법을 독점해왔던 특정 집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진작에 의제화되었어야 했다. 너무 늦은 숙제를 지금 마주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광화문에서든 서초동에서든 일관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 자명한 과제를 두고 대립하는 것일까. 문제는 도덕과 법, 정치란 범주를 혼동하고, 숙제에 집중해야 할 때 숙제를 푸는 방법으로 다투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개혁임에도 숙제하기 싫은 학생은 연필 탓을 한다. 그러고 보니 연필이 못나기도 했고, 흠집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숙제를 미룰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연필 운운하는 순간 숙제할 시간은 지나간다. 범주오류에 빠지지 말자. 개혁해야 할 때는 개혁을 말하고, 품성을 말할 때는 품성을 논의하자.

이번 사태로 계급문제가 불거졌고, 세대 간 불평등이 문제라고도 말한다. 이 논의에 끼지도 못하는 이들이 문제라고 외치기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무리 옳은 말도 잘못된 자리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외치면 거짓이 된다. 해방의 외침 100년과 정부수립 70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체제 전체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방향을 정립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장기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 사회가 성립된 지 100여 년을 향해 가면 당연히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과 사회 시스템, 경제와 법체제, 언론과 문화 환경을 되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향한 전망을 되새기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과제다. 가장 중요한 이런 전망을 위해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그 토대가 이른바 적폐 청산이며, 사법개혁을 비롯한 최소한의 개혁이지 않은가. 지난 정권에서 비롯된 수많은 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가. 100년 이후 우리 사회를 위한 전망은 무엇인가. 그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3년 전 촛불을 들었을 때는 다시는 이렇게 모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또다시 시민을 광장으로 불러내는가. 당신들이 개혁해야 할 때 개혁하지 못한 탓을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다. 다시금 기회를 주고 있지 않은가. 담대하게 개혁해야 한다고, 연필 탓은 잠시 접어두고 당장 해야 할 숙제라도 마쳐라! 우리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이 체제는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재현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직업정치인들은 얼마나 시민의 뜻을 재현했는가. 약속으로서의 공약이 빈껍데기 공약이 되는 순간 정치는 배반으로 흘러간다. 수없이 목격하는 배반에 진절머리가 난 시민이 또다시 모였다. 광장의 시민은 한결같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적 타산을 따지지 말고 숙제를 끝내라고 외친다.

국회를 점령한 반개혁세력이나 언론 때문이라고 변명하거나, 관료들이 버티고 있어 그렇다고 탓을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과 별개로 개혁과제를 맡은 당신들은 얼마나 이 숙제를 진지하게 수행했나. 아무런 개혁도 이뤄진 것이 없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교육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잘못된 대학체제부터 바꾸자고 하더니, 대학문제는 지난 정권보다 더 심각해졌다. 잘못된 경제구조와 재벌개혁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소상공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신음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사법농단도, 종편을 비롯한 언론 개혁이나 가짜뉴스와 혐오를 쏟아내는 언론 환경도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동안 무엇을 하셨기에, 또다시 이렇게 모여 외쳐야 하는가. 좌면우고하지 말고 담대하게 개혁하시라. 이 기회를 놓치면 정권은 반개혁 세력에게 돌아가고, 정치는 심각하게 퇴행할 것이다. 전쟁을 앞두고 장수의 옷가짐 따위로 힘을 빼지 마시라. 검찰개혁이 울타리 안의 권력 싸움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촛불 든 손을 빌려 당신들의 정략적 이익을 채우지 마시라. 시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다시금 냉소의 시대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담대하게 개혁하시라.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담대하지 않으면 한없이 몰락한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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