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칼럼]일본의 노벨상, 부러워 하기전에 부끄러워해야

이명호

발행일 2019-10-15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日, 연구제안서 준비 기간만 10년
장비 개발·성과 얻기 '12년 소요'
우리나라, 연구자 프로젝트단위로
정부예산 받아 1~5년 정도 수행
자력 연구비 확보땐 통제도 안받아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디자이너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매년 10월이 되면 과학기술계에 되풀이되는 질문이 있다. 언제 우리나라는 노벨과학상을 탈 수 있나?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올해 일본 노벨화학상 수상을 거론하며 왜 우리나라는 노벨과학상을 타지 못하냐며 과학기술자들을 질책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한 야당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꿈으로 53년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만들어 줬으면 지금쯤 되면 노벨과학상 나와야 한다"며, 아직도 노벨상 하나 타지 못한 것은 결국 과학기술인들의 노력이 부족하고 마음가짐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과학기술계 답변도 판박이였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일본 정도의 연구 인프라와 역사, 자율성, 지속성이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노벨상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덧붙여 "우리나라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이 25개 있다면 일본은 기초원천 연구를 수행하는 리켄(RIKEN·이화학연구소) 등은 우리나라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연구기관 규모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도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로 "출연연의 정비, 지원 등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과학기술계 책임자들은 "인력 규모는 물론 예산 규모도 일본이 우리보다 1.5~2배 정도 크다며, 연구의 질은 그 규모에 비례한다"는 답변을 반복하였다.

정말 우리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가 노력 부족이거나, 규모의 문제일까? 우선 규모의 문제를 살펴보자. 과학기술계 정부 출연연 25개의 전체 인원은 1만6천명 수준으로 기관별 평균 630여명 수준이다. 가장 인원이 많은 기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으로 2천100명, 한국원자력연구원 1천200여명이고, 대부분의 기관들은 20%에 달하는 정원 외 비정규직까지 포함하여 200~300명 수준이다. 규모의 경제, 융합 연구, 연구의 질을 위한 규모로서는 턱도 없이 적은 규모이다. 왜 이런 작은 규모의 연구소들이 난립한 것일까? 과학지식의 축적과 진화를 무시한 채 새로운 유행을 좇아 특정 연구소를 만들어 나간 무원칙한 과학기술 정책과 그 이면에는 정치논리로 자기 지역에 연구소를 유치하려고 하거나, 기관장 수를 늘려 공무원의 자리를 만들려는 관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수의 노벨상을 배출한 일본의 리켄은 어떠한가? 리켄은 기초원천 연구를 하는 연구소라기보다는 일본에서 유일한 통합과학을 수행하는 종합연구소이다. 인원은 약 3천400명에 달한다. 1917년에 설립된 리켄은 일본 왕실의 하사금과 정부보조금, 민간기부금 등 정부와 민간기업의 협력으로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으나 주식회사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독립행정법인이 되었다. 2~3년마다 개최하는 리켄자문위원회에서 연구 평가의 기본 잣대와 5년간 R&D 방향을 정한다. 이런 구조가 있기에 독립적, 자율적, 창의적인 연구, 장기적인 연구가 가능했다.

한 리켄의 이사장은 입사한지 25년이 되었는데, 연구 제안서를 준비하는 데만 10년, 연구장비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얻기까지 12년이 걸렸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장기연구가 가능한 테뉴어 연구원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5년마다 평가를 통해 연구원 신분을 유지하는 임기제 연구원이다. 대부분의 신진 연구자들은 선임 연구자들과 함께 대형연구를 수행해보는 경험을 쌓고 대학으로 돌아가서 독립적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소와 인력교류를 한다. 이러한 두뇌의 순환이 리켄의 핵심적 가치 중 하나다. 또한 리켄이 장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기초연구에 집중하면서도 연구성과물을 사회에 환원하는데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63개의 기업이 설립되었고 사업화에 따른 수익이 다시 기초과학에 쓰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반면에 우리나라 정부 출연연의 연구 환경은 어떠한가? 연구소의 자체 연구 기획과 예산배분 권한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연구자가 제안서를 만들어 프로젝트 단위로 정부 예산과 인건비를 받아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정도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자기 노력으로 연구 예산을 딴 연구원은 연구소의 통제도 받지 않는 구조이다. 연구소 내의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고 지식이 연구소 내에 축적되지도 않는다. 장기간의 꾸준한 연구는 있을 수 없다.

일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을 부러워하기 전에 아직도 정부에 종속된 연구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이명호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