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고서산책']영원한 국민적 고전, '춘향전'

조성면

발행일 2019-10-21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300년간 민족소설… 이본만 120종
민중-양반의식 갈등하면서도 '화합'
각계각층 즐기는 '국민 통합성' 가치
이슈마다 진영 간 대결 우려되는 때
우리는 이미 '춘향전'으로 하나였다

전문가 조성면2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한국사람 치고 '춘향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300년간 우리를 울리고 웃긴 대표소설이요, 연희예술이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고전답게 이본만 120종이 넘는다. 경판본·완판본·안성본 등 방각본소설을 비롯해서 필사본에 한문소설, 한시도 있고, 근대에는 이해조(1912)·최남선(1913)·이광수(1927)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앞다퉈 '춘향전'을 펴냈다.

'춘향전'은 국민 고전의 범주를 넘어 문학 한류의 원조였다. 나카라이 도스이가 '계림정화'(鷄林情話, 1882)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대만의 리이타오(1906), 후일 경성제대 교수가 된 다카하시 도오루의 번역본(1910)에 베트남에서도 1910년 '춘향전'이 번역된 것이다. '춘향전'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진출했는데,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1814~1913)가 로니(J.-H. Rosny)와 함께 공역, 1892년에 나온 불어판 '춘향전' 즉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e)'이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1936년 러시아의 한 발레단이 '사랑의 시련'이란 이름으로 '춘향전'을 공연한 바 있다. 번안에 가까운 작품들이었지만, 자녀들의 성윤리 교육에 관심이 높았던 유럽 귀족들과 상류사회에서 '춘향전'이 큰 주목을 받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홍종우는 경기도 안산 출신으로 1866년 도일하여 인쇄소 식자공으로 일하고 휘호 등을 팔아 여비를 마련한 다음, 1890년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그가 왜 '춘향전' 번역에 참여했는지 또 개화파였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면서 돌연 보수적인 위정척사파로 변신하여 상해의 동화양행에서 김옥균을 암살한 것인지도 궁금하다. 당시 김옥균은 이와다 슈사쿠(岩田周作)란 일본 이름을 쓰고 있었다.

'춘향전'은 국민소설의 원조였지만 계급과 지역에 따라 달리 소비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판된 경판본과 여기에서 파생된 '남원고사'는 춘향의 신분이 기생임을 내세우는 남성중심주의와 유교이데올로기에 충실하다. 반면 전주에서 출판된 완판본 '춘향전'으로는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가 유명한데, 춘향이 양반가의 서녀임을 강조하면서 한양으로 떠나는 이도령에게 발악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또 완판본에는 "수원 숙소하고 대황교, 떡전거리(병점), 진개울, 중미, 진위읍에 중화하고" 등처럼 이몽룡의 암행 경로에 수원·병점·진위 정도만 등장하나 다른 이본에는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 올라서서 참나무정 얼른 지나, 교구정 돌아들어 장안문 들이 달아 팔달문 내달아, 상류천, 하류천, 진개울, 떡전거리, 중밋, 음의, 진위" 등 의왕·수원·병점·오산에 이르는 경로가 상세하게 등장하여 특히 흥미를 끈다.

다양한 이본 존재가 말하듯 '춘향전'을 둘러싼 평가도 제각각인데 춘향의 항거를 신분사회에 대한 도전이자 저항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한편, 이몽룡에 대한 순정과 정절이데올로기에 대한 순종도 있어 저항의 문학으로 보는 데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한문본을 보면 춘향이 이도령의 첩실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등 유교이념에 대한 강박도 보인다. 그런데 '춘향전'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민중의식과 양반의식이 만나 양자가 서로 갈등하면서도 화합하고 각계각층이 즐기는 이 국민적 통합성이야말로 '춘향전'의 현재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등 이슈 때마다 반복되는 진영 간의 대결이 우려스럽다. 이럴 때 모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줄 '춘향전' 같은 국민적 고전이 몇 개 더 있으면 어떨까 싶다.

필자의 소장본은 '현토 한문 춘향전'(1917)과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 등인데, 아쉽게 완판본은 첫 장과 뒷부분 4장이 없는 낙질본이다. 이 아쉬움이 국민통합과 화합으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모두 '춘향전'의 애독자다. 우리는 이미 '춘향전'으로 하나였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조성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