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돼지 이야기

최지혜

발행일 2019-10-2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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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감염원·경로 '불명확'
가축전염병 '방역·살처분'만 반복
2010년 구제역 이야기 담긴 그림책
'공장식 축산' 근본적 문제 지적해
'동물복지 농장' 전환 확대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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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열흘 동안의 라오스 학교도서관만들기 프로젝트를 끝내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강화도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그런데 행선지를 말하고 나니 왠지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택시기사님께서 "강화도는 좀 꺼려지니 택시비를 조금 더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기사님 말은 그사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고 초지대교 입구에 소독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를 지나면 자동차에 소독약이 뿌려지면서 차가 지저분해져 지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막상 강화도에 들어와 보니 초지대교에 설치된 방역시설 외에는 그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일상들로만 보였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1910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발병하여 유럽을 거쳐 마침내 우리나라까지 온 바이러스로 돼지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우리나라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된 것은 불과 한 달 전인 9월 17일께로 경기도 파주, 연천에 이어 김포와 강화도까지 번졌다. 이 전염병균은 백신도 치료제도 없을 뿐 아니라 돼지와 돼지류에 급속하게 번지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치사율이 거의 100%라고 한다. 그래서 정부는 가능한 남쪽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자 감염지역의 모든 돼지들을 '살처분' 했다. 강화도도 마찬가지로 강화도에 살고 있는 모든 돼지는 살처분됐고 심지어 애완으로 키우는 돼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돼지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감염 경로를 야생 멧돼지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감염원과 감염경로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야생멧돼지 실태를 관리하는 환경부도 가축전염병관리를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도 방역을 실시하는 시·도와 시·군·구 등 지자체도 명확한 원인분석도 없이 일단은 바이러스성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퇴치하고자 방역과 살처분으로 전파경로를 차단했다.

문제 발생 후, 우선적으로 전파경로를 차단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인데 문제는 그다음 단계가 없다는 것이다. 살처분으로 전파경로만 차단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종료되는 것일까?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종료된 후 또 다른 가축 전염병이 생긴다면 발등에 떨어진 불 끄듯 방역과 살처분을 반복할 것인지? 과연 그것이 최선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인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가축 전염병의 근본적인 원인과 사육 환경, 나아가 동물복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무차별 살처분된 돼지들을 생각하며 그림책 '돼지 이야기'(유리 지음/이야기꽃 출판)를 펼쳐본다. 이 그림책은 2010년 겨울에 발병한 구제역이라는 질병으로 돼지들이 대량 살처분 되었던 이야기와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돼지는 원래 흙 밟기를 좋아하는데, 인간의 편의에 따라 공장식 축산으로 평생 콘크리트 위 쇠창살에 갇혀서 살게 된다.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 살면서 많은 질병에 노출되고, 바이러스에도 쉽게 전염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염병이 한번 돌게 되면 대량으로 살처분 되는데 그날이 돼지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 된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났지만 돼지들의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로 끝을 맺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살충제 계란 사태'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들이 대두되었다. 그 후에도 여전히 많은 동물들이 동물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최근 마트에 가면 '동물복지인증마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물복지 인증제도란 농장 동물이 본래의 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육환경을 제공하고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등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복지법의 기준에 따라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에 대해서 국가가 인증하고, 인증 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인증마크'를 표시하고 있다. 아직은 동물복지 인증 농장의 수가 적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정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 농가가 동물복지 축산 농장으로 바뀔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축산 농가는 궁극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위해 동물과 사람에게 건강한 사육환경을 선택해야 하고 소비자는 일반 상품에 비해 다소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동물의 복지가 보장된 제품을 선택하는 안전하고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겠다. 인간은 생태계의 일부이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음을 기억하고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겠다.

/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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