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지는 꽃

권성훈

발행일 2019-10-2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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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가난스런 / 바람 손을 놓고



한 잎 한 잎 / 어제의 / 꽃잎이 떨어진다.



진실한 빛깔로 타던 / 그 하늘은 / 지금 침묵.



한 모금 물 / 찾던 눈 감기고 / 너무나 조용한 지상



무수히 내려 쌓이는 / 멀어져 간 전설은



고독이 띄우는 / 아픈 / 웃음의 음성이었다.

김제현(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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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넉넉하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 '가난'은 이미 가득 차 있는 '부유'로서 헤아릴 수 없는 물질적 순수함이 있다. 거기에는 있던 것이 없는 부재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결핍에 대한 지난한 여정도 겹쳐진다. 가령 추위에 '바람 손을 놓고'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 없음에서 있음으로 와서, 있음에서 없음으로 가는 끝에서 다시 만나는 처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 '한 잎 한 잎' 일궈낸 '어제의' 수많은 날들도 꽃처럼 화사하게 피었다가 허무하게 가는 것이니. 그 순간만큼은 '진실한 빛깔로 타던' 하늘이 있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지금 침묵'하면서 '지는 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눈 감기고 너무나 조용한 지상'의 본질을 조응하게 만든다. '춥고 가난스런' 이 가을 '고독이 띄우는 지는 꽃'처럼 '무수히 내려 쌓이는' 이야기는 '멀어져 간 전설'로 남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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