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

[이영재 칼럼]다시 읽는 대통령의 취임사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조국 사태로 명문장서 조롱의 상징으로
이제 남은 2년 6개월은 '대통령의 시간'
잘못된 결정 있었다면 수정하는게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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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며칠 후면(1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5년의 반환점을 지나게 된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며 희망찬 취임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집권기 반이 지난 것이다. "아직도 반이 남았다"고 하는 국민도 더러 있을 것이고, "벌써 반이 지났나"라며 시간의 빠름에 새삼 놀라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이제 언론은 반환점을 돌고 있는 문 대통령의 2년 6개월에 대해 많은 논평을 쏟아낼 것이다.

전임 박근혜 정권은 '불통'으로 일관하다 몰락했다. 그것을 지켜본 2년 6개월 전 문 대통령은 '불통'이 아닌 '소통'의 길을 가겠다는 구호로 집권했다. 마치 전 정권의 실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민심의 출렁임과 경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은 것도 그래서다. 취임사는 구구절절 명문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는 말할 것도 없고,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라며 소통을 강조한 부분에서는 지난 취임사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취임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공허한 구호였다. 언론을 멀리한다며 전임 대통령을 그토록 비판했으면서도, 정작 문 대통령의 공식 기자회견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반대 진영이나 야당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구하지도 않았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지만, 조국사태로 국론은 찢어지고, 갈리고, 분열되며 '조국 지지'와 '조국 반대' 집회가 대규모 세 대결 양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광장 정치를 뜨겁게 달궜다. 그래서 민심과 동떨어진 문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은 여러 번 논란이 됐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문 대통령 취임사 내용 중 백미는 단연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대통령의 취임사가 있었지만, 집권기간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이렇게 시적 문장으로 아름답고 명쾌하게 적시한 취임사는 없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학 과정이 드러나면서 '공정 사회'에서 살고 싶었던 20대는 좌절했고, '정의 사회'에 살고 싶었던 국민은 분노해 이 시적 문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조롱하는 상징의 문장이 되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사를 읽던 문 대통령은 2년 6개월 후,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분열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입만 열면 촛불 혁명으로 태어나 공정, 평등, 정의로 가득 차있을 것 같은 대한민국이 2년 6개월 만에 이렇게 처참하게 부서질 줄도 몰랐을 것이다. 취임사 중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지켜졌을 뿐,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가 "그럼 이건 나라냐"라는 푸념으로 되돌아올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반환점을 돌면 후회는 많아지고 시간은 더 빠르게 지나간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이 내려올 땐 보이네'라는 시처럼, 확실해 보였던 정책도 "그때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던가"라는 후회가 남는 경우가 많다. 이제 남은 2년 6개월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그것도 레임덕이 없을 경우를 가정해서다. 잘못된 결정이 있었다면 남은 시간에 이를 수정해야 한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무다. 판단 착오를 인정하기 싫다고 외면할 경우,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아직도 임기가 반이 남았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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