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실패와 다른 시작

이제 검찰 개혁마저 흔적으로만 남아
사회 상층부 이들의 막강한 힘에
변죽 울리다 정치권력 논의로 사라져
실패는 '더 큰 상처·과제'로 돌아와
불공정 이기려면 시민정신 회복해야


2019111001000599300028831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사법 개혁은 이미 철 지난 노래가 되었다. 법원 개혁은 진작 끝났지만 이제는 검찰 개혁마저 그저 흔적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동안의 법조개혁 파동을 거치면서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사실이다. 사회 상층부에 자리한 이들이 지닌 막강한 권력과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울타리가 이렇게도 강고하다니. 그에 비하면 조국 가족이 누렸다고 말하는 특권 따위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 사회는 법의 이름을 빙자한 기득권 사회며, 자본의 횡포를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지켜가는 사회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법이 지켜야 할 비례성의 원칙 따위는 고사하고, 이를 넘어 우리 사회의 공정성이란 결국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가슴 아프게 느끼게 된다. 공고한 대학 서열과 그 이후 얻게 될 사회적 권리와 이익에 비춰보면 단순히 대학 입시과정에서 공정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여기에 기회의 평등이란 없다. 끝없이 확대되는 자본 불평등과 세습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둔 채 결과의 정의를 말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재벌에 대한 판결과 노동자에 대한 손배소 기소에, 임대료와 최저임금 논쟁 그 어디에 과정의 공정함이 자리하는가. 전관예우는 법조계뿐 아니라, 고위 관료들과 기업 임원을 비롯한 이 사회의 기득권층에는 변하지 않는 기본 사양이 아닌가. 공정을 말하는 그 입이 너무도 우습다. 검찰총장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대통령의 그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착시일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면 가짜 뉴스가 된다. 자본이 주는 한 줌의 풍요에 취해 그들만의 결탁과 독점을 보지 못한 탓이다.



사법개혁은 변죽만 울리다가 곧장 그들만의 정치권력 논의로 사라진다. 사법개혁은 결국 울타리 안의 권력게임이 되었다. 정치권은 시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위한 개혁을 말하다가 이제는 총선으로 관심이 쏠렸다. 무엇을 위한 정치권력인가. 검찰 개혁을 요구하면서 광장에 모인 시민은 민주당 유권자가 아니다. 착각하지 마시라. 우리는 검찰 개혁과 그를 위한 지지를 외쳤지, 정권 지지를 말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집권한 이후 대통령만 바뀌었다는 자조가 일부의 것인 줄 아는가. 있을 수 없는 광화문에서의 저 소리를 다만 수구꼴통의 외침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퇴행적 행태 뒤에 숨어있는 일말의 절박함을 듣지 못하면 실패한다. 사라졌어야 할 저 소리는 왜 여전한가? 그들의 기득권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담대한 개혁이 정치적 결실을 맺을 것이다.

실패한 개혁은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일은 더 큰 상처로 돌아오며, 실패는 새로운 반동을 불러온다. 마무리 짓지 못하면 더 큰 과제로 남는다. 이 과제는 오직 민주시민 만이 해결할 수 있다.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민주시민으로 자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민주사회에서 권력은 시민에서 나오고 시민이 동의하지 않은 권력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기억하지 않으면 비극으로 되풀이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넘어 시민이 되는 것은 우리가 도시민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정신을 지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자각하고, 그 공동체를 위해 참여하는 시민, 이를 위해 계몽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행동으로 지켜나가는 이들이 시민이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조화시키면서 권리와 자유를 지켜내는 사람이 시민이다. 이를 위한 자각과 실천은 시민이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이다. 이것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심각하게 불공평한 이 사회의 희생자가 된다. 그 사이 우리는 미필적 고의의 가해자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한 배움과 자각은 물론, 그에 필요한 희생과 절제는 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면서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의무를 다하지 않는 곳에 권리는 있을 수 없으며, 희생 없이는 어떠한 고귀한 가치도 얻을 수 없다.

"개 돼지 민중"이 되지 않으려면 맞서 일어나야 한다. 맞서기 위해서는 자각해야 하며 투신해야 하며 그에 걸맞게 희생해야만 한다. 법을 가장한 기울어진 운동장, 제도를 빙자한 불평등, 체제 안의 불공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시민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