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반드시 밝혀야 할 '세월호' 진실

방민호

발행일 2019-11-1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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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청장 헬기로 이동하는 사이
배로 옮겨다니다 희생된 학생이야기
일부 구조담당자 책임으로 축소 우려
중추·하위 권력이 무슨일 벌였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명백히 밝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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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세상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홍콩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해 맞은 사람이 위독상태라고 한다. 시위 중 추락사 한 대학생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을 향해 또다시 국가적 폭력이 행사된 것이다.

사태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중국 정부에서는 의도적으로 '비상사태'를 방치 내지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 홍콩 사태는 당장 1989년 4월에 베이징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중국 정부는 대학생이 주축을 이룬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해서 오늘에 이르렀던 것을, 이번에는 중국에 반환된 홍콩에서 새로운 '반복'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

홍콩 사태에 관해 채널 티브이들은 숨 가쁜 어조로 그 심각성을 전달한다. 그러나 좀처럼 이 사태를 한국의 과거에 오버랩시키는 것은 자제하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알고 느끼는 사람은 느낀다. 경찰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쏜다는 것, 그것은 1980년에 우리 군부가 광주 시민들을 향해 참혹한 폭력을 행사했던 사실에 직접 연결된다. 헬리콥터에서 기총 소사가 있었다는 최근의 '전언'은 '5·18'이 사십 년 가까운 지금에까지 아직도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국가 또는 국가의 특정한 중심 세력이 국민, 시민을 향해 살상 무기를 드는 행위는 현대 국가가 결코 문명적으로만 운영되고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문명이 진보하는 만큼이나 야만도 훨씬 더 큰 규모로 증대하고 있는 것이 이 현대 국가의 커다란 모순 중 하나다.

프랑스 현대비평가 미셸 푸코는 현대 이전에 '국가'는 그 구성원들을 죽게 내버려두거나 살게 하는 반면, 현대 '국가'는 그들을 살게 하거나 죽게 내버려 둔다고 했다. 이를 받아 이탈리아 비평가 조르지오 아감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예증을 들어, 이제 이 현대국가는 '생명 정치'만큼이나 '죽음의 정치'를 행한다고, 이 수용소 같은 국가 체제는 그 구성원들의 생명을 처분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권력을 소유한다고, 그리하여 죽음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는 인간들을 재생산하는 체제라고 말한다.

정확히 옮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아감벤의 '죽음의 정치'는 필자로 하여금 필자의 시선을 늘 2014년 4월 16일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기이하고도 참혹한 참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처음에 기성세대들은 한껏 양심적인 척하면서 경제주의, 물질주의의 탐욕이 이 참사를 불렀다고 입을 모았다.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안개 짙은 밤에 출항을 결정한 선박회사의 책임을 부각시키면서 이 책임을 다시 사회 전체와 특히 기성세대의 물질주의로 분산, 해소시키는 논리였다.

필자 또한 처음 며칠 동안은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생중계를 하는 와중에 어떤 구원의 손길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침몰해 가던 배 안의 고등학생들의 절규는 그러한 분산, 해소 논리를 의심하게 했다. 해경청장이 헬기를 타고 날아가는 사이에 배에서 배로 옮겨 다니다 생명을 잃은 학생의 이야기도 자칫 무성의하고 안일한 일부 구조 담당자들의 도덕적, 법적 책임 문제로 세월호 참사를 축소시키기 쉽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때 국가가, 국가를 움직이던 중추 세력이, 그 상위 권력의 의지를 받든 하위 권력이 무슨 일을 어떻게 벌였는지 알아내야 한다. 도대체 왜 가만히 있으라 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들을 가로막았는지 밝혀져야 한다.

국가가 국가의 이름으로 명백하게 또는 은밀하게 행사하는 죽음의 통치 시대를 끝내야 한다. 이 나라에서도, 황해 너머에서도, 현해탄 건너에서도 국가의 죽음의 폭력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변명하는 시대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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